슬로베니아의 조력자살 허용 법안이 23일(현지시간) 국민투표에서 부결됐다. 여론조사에서는 찬성이 우세했지만, 우파의 결집과 가톨릭계 보수층의 높은 투표 참여율이 결과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슬로베니아 선거관리위원회가 이날 발표한 잠정 결과에 따르면, 개표가 거의 완료된 시점에서 반대 53%, 찬성 46%로 집계됐다. 투표율은 약 41%로 나타났다. 반대표가 총 유권자 170만명 중 20% 이상을 차지해야 효력이 있다는 ‘결정적 다수’ 요건이 충족되면서 이번 법안은 좌절됐다.
슬로베니아의 조력자살 허용 법안은 지난해 6월 비구속 국민투표에서 54.9%의 찬성 결과가 나오면서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좌파·중도 연정이 주도하는 슬로베니아 의회는 지난 7월 이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이후 우파 정치인 알레쉬 프림츠가 가톨릭 단체 및 보수 진영을 중심으로 반대 캠페인을 이끌며 4만명 이상의 서명을 받아내 국민투표가 성사됐다. 슬로베니아는 국민 4만명 이상의 서명이 모이면 의회가 통과시킨 법률도 국민투표를 통해 다시 심판할 수 있다.
실제 슬로베니아의 여론은 찬성쪽이 우세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슬로베니아 현지 일간지 드네브니크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54%가 조력자살 합법화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투표 당일 우파·종교 보수층의 결집, 일반 유권자의 낮은 참여율 등 영향으로 반대가 과반을 넘는 결과가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프림츠는 투표 직후 “생명 존중의 가치가 승리했다”면서 “슬로베니아는 ‘독살에 의한 죽음’을 기반으로 한 정부의 보건·연금·사회 개혁을 거부했다”고 말했다.
반면 법안을 지지해온 정치권과 단체들은 “실망스럽지만 논의는 끝나지 않았다”며 향후 재추진 의사를 밝혔다. 로버트 골롭 총리도 이날 보도자료에서 “법안이 거부됐지만 우리의 도전은 계속될 것”이라며 “이것은 정치적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 인권, 개인의 선택의 문제”라고 덧붙였다.
조력자살 제도는 스위스, 네덜란드, 벨기에, 캐나다, 미국의 여러 주 등에서 운영되고 있다. 영국의 경우 하원이 올해 초 조력자살 합법화 법안을 통과시켰고, 현재 상원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영국 법안은 말기 6개월 미만의 성인에게만 허용되며, 두 명의 의사 승인, 사법 감독, 자가 투여 원칙을 포함하고 있다. 의사가 직접 약물을 투여하는 벨기에와 네덜란드에 비해서는 제한적인 법안이다. 슬로베니아 법안도 영국과 유사하게 말기 환자를 대상으로 두 명의 의사가 승인해야 하며, 일정 기간의 숙려 기간과 환자 본인이 약물을 직접 복용하는 절차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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