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전현직 의원들이 지난 20일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충돌 사건’ 1심에서 의원직 상실은 피했지만, 전원 유죄 판결을 받았다. 특히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2400만원의 가장 무거운 벌금형을 선고 받았다.
여야의 평가는 극명하게 갈렸다. 더불어민주당은 “장고 끝 악수”(정청래 대표)라며 반발했다. 전현희 최고위원도 “민의의 정당 국회를 불법 점거한 난동꾼들에게 솜방망이 처벌을 내린 법원 결정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검찰의 항소를 촉구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독재 항거를 인정한 판결’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나 의원은 법원을 나서며 “무죄 선고가 나오지 않은 것은 아쉽다”면서 “법원은 결국 더불어민주당의 독재를 막을 최소한의 저지선을 인정했다”고 평가했다.
정치권은 전현직 국회의원이 무더기로 유죄 판결을 받은 것도 이례적이지만, 1심 선고가 6년7개월 만에 나온 것도 극히 드물다는 반응이다. 그만큼 정치적인 사건이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대체 2019년 4월 국회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바른미래당 ‘내전’으로 시작
때는 2019년 4월 25일 이른 아침. 국회에는 전운이 감돌았다. 여야 4당(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법안(공수처법)과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 등을 패스트트랙에 올리기로 하면서,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바른정당계 의원들은 육탄 방어전을 예고했다.
가장 먼저 포성이 울린 곳은 바른미래당 내부였다. 오전 8시 30분, 유승민 등 바른정당계 바른미래당 의원들이 국회 의사과 앞을 메웠다.
“오신환 사보임을 막아라!”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에서 패스트트랙에 반대하던 ‘캐스팅보터’ 오신환 의원을 교체하려는 김관영 당시 바른미래당 원내대표의 움직임을 저지하기 위한 이들은 온몸으로 저지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김관영 원내대표는 팩스 한 장으로 국면을 뒤집었다.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가 사보임계를 팩스로 제출했고, 문희상 국회의장이 ‘병상 결재’로 오 의원을 채이배 의원으로 교체하는 내용의 바른미래당측 사보임계를 허가했다. 이 순간 패스트트랙 시동이 걸렸고, 국회는 사실상 전면전 상태로 돌입했다.
◆자유한국당의 ‘진지 구축’…회의장 봉쇄, 감금 사태
같은 시각, 한국당도 긴급 의원총회를 열어 정개특위·사개특위 회의장 3곳을 선제적으로 점령했다. 회의실 앞엔 의원 20여명, 보좌진·당직자 수십 명이 1·2차 방어선을 짜고 입구를 봉쇄했다.
이날 국회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은 바로 ‘채이배 의원 감금 사태’였다.
‘오신환 사보임’ 소식이 전해지자, 한국당 의원 10여 명이 새 사개특위 위원이 된 채이배 의원실로 돌진했다. 회의 참석을 막기 위한 사실상의 감금이었다. 당시 채 의원은 “창문 뜯고 나가겠다”고 말하며 112와 119에 신고했고, 소방관마저 출동했다.
채 의원이 창문 틈으로 얼굴을 내밀어 기자들과 인터뷰하는 장면은 그 자체로 ‘아수라장 국회’의 상징이 됐다. 채 의원은 4시간 만인 오후 3시가 넘어서야 극적으로 ‘탈출’했다.
◆자정 넘어 이어진 충돌…의안과 점거, 기물 파손
같은 날 밤, 민주당 의원들이 공수처법·검경수사권 조정안을 의안과에 제출하려 하자 한국당이 이를 가로막았다. 양측의 고성·몸싸움·밀고 당기기가 새벽까지 이어졌다. 한국당은 아예 의안과를 이틀간 점거했다. 국회사무처 사무실 점거는 헌정사상 초유였다.
결국 문희상 국회의장은 1986년 이후 33년 만에 국회 경내 경호권을 발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충돌은 멈추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갈비뼈가 부러지고 전신에 멍이 드는 부상자도 속출했다. 의안과 문은 쇠지렛대(속칭 ‘빠루’)·장도리·망치로 강제로 열리는 과정에서 너덜너덜해지기도 했다.
◆ ‘빠루 논란’으로 번진 공방
당시 여야 공방의 중심에 던져진 빠루는 25~26일 새벽 의안과 앞 충돌에서 등장한 도구였다. 한국당이 문을 걸어 잠그며 점거하자 국회 관계자들이 문을 열기 위해 동원한 것이다.
나경원 당시 한국당 원내대표는 26일 오전 의원총회장에 빠루를 직접 들고 등장하며 논란에 불을 붙였다. 한국당은 “민주당이 문을 부수려 했다”고 주장했고, 민주당은 “경호권 발동에 따른 국회 차원의 조치일 뿐, 당과는 무관하다”는 취지로 반박했다.
◆ 최초의 전자발의…전례 없는 ‘입법 전쟁’
당초 25일 검경수사권 조정안은 한국당의 봉쇄로 의안과 제출이 좌초됐다. 그러나 민주당은 다음 날 전자입법발의시스템이라는 ‘우회로’를 찾아내 한국당의 허를 찔렀다. 전자발의 시스템 도입 이후 첫 사례였다.
이로써 여야 4당은 선거제·개혁법안 패스트트랙 지정을 위한 법안 총 4건(공수처법, 공직선거법 개정안, 검경수사권 조정을 위한 형사소송법·검찰청법 개정안 등) 발의를 모두 완료했다.
◆ 결국 패스트트랙 지정…혼돈의 결말은 ‘동물 국회’
사개특위는 29일 밤 자유한국당의 극렬한 반대 속에 공수처 설치법과 검경 수사권 조정안 상정을 강행했다. 한국당의 회의 봉쇄 속에서도 제안 설명과 의사진행발언, 무기명 투표가 진행됐고, 법안들은 30일 새벽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됐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도 같은 날 새벽 전체회의를 열어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패스트트랙에 지정했다.
연동형 비례제·공수처법을 둘러싼 격돌 끝에 법안들은 결국 패스트트랙에 올랐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2012년 폭력 국회를 막자며 여야 합의로 통과시킨 국회선진화법은 사실상 무력화됐고, 국회는 다시 한 번 ‘동물 국회’라는 오명을 떠안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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