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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저장부터 추위 극복까지… 선조들의 치밀했던 ‘생존기술’

입력 : 2025-11-22 06:00:00 수정 : 2025-11-20 19:46:04
이규희 기자 lk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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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의 과학/ 이재열/ 사이언스북스/ 3만3000원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세계적 인기를 누리며 극 중 ‘사자보이즈’가 쓴 갓이 해외 팬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외국 관객에게는 ‘힙한’ 패션 아이템으로 비쳤지만, 한겨울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 선조들은 이 갓을 어떻게 활용했을까. 조선시대 갓을 비롯한 관모는 기품을 자랑했으나 찬 바람은 막지 못하는 약점이 있었다. 이 한계를 보완하면서도 멋을 잃지 않기 위해 사대부들은 갖가지 보온장치를 고안했다. 조선 전기에는 귀를 감싸는 이엄이, 후기에는 이마·볼·목·어깨까지 두루 덮는 완모가 등장해 스타일과 보온을 함께 챙겼다.

혹한과 혹서에 맞서 음식을 보관하는 방법 또한 선조들의 지혜가 응축된 분야다. 항아리에 생선을 넣고 소금을 켜켜이 뿌린 뒤 땅에 묻어 저장하고, 고기는 연기를 쪼이거나 술을 뿌려 삶은 뒤 장 속에 파묻었다. 미생물의 존재를 알지 못하던 시절, 음식을 상하게 하는 미생물의 분탕질을 피하려는 경험적 지혜였다. 겨우내 먹기 위해 채소를 소금에 절여 젓갈과 양념을 버무린 김장 김치는 이러한 저장기술의 정수를 보여준다. 김치 항아리인 옹기는 산소는 통과시키되 물방울은 들이지 않는 미세한 기공 구조로 발효와 숙성에 최적화된 저장 용기였다.

 

이재열/ 사이언스북스/ 3만3000원

선조의 살림 지혜를 보여주는 장면은 또 있다. 세조 때 어의 전순의가 쓴 ‘산가요록’에는 한겨울 채소를 재배하기 위한 조선식 온실 기술이 실려 있다. 기름먹인 창호지로 유리를 대신하고, 벽에도 창호지를 발라 햇빛 반사 효과를 높였다. 방 안 습도를 올리기 위해 물을 뿌리고, 온돌을 이용해 바닥에 식물을 심었다. 물론 이러한 기술은 궁궐에서나 가능한 호사였고 민간에선 적용하기 어려웠다. 대신 민가에서는 맹추위가 닥치기 전에 시래기와 우거지를 넉넉히 말려두어 겨우내 채소를 섭취했다. 형편에 맞춘 생존술이었지만, 오늘날 돌이켜보면 이것이 곧 살림의 지혜였다.

미생물학자인 이재열 경북대 생명과학부 명예교수는 이 책에서 전통 가옥의 부엌, 안방, 대청, 사랑채, 마당을 두루 훑으며 전통 살림 여기저기에 숨어 있는 생활과학의 면면을 살핀다. 둠벙과 민화 병풍, 베갯모, 반닫이, 갓과 이엄, 맷돌, 석빙고 등 사물의 형태와 쓰임을 살피며 그 속에 깃든 과학적 의미를 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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