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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 탄생시킨 ‘정치 문법’… 역사 속 흐름 탐구

입력 : 2025-11-22 06:00:00 수정 : 2025-11-20 19:45:50
박성준 선임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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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발명/ 조홍식/ 글항아리/ 3만3000원

 

우여곡절을 거쳐 1993년 출범한 유럽연합(EU)은 실상 매우 특이한 사례다. 주권국가들이 스스로 주권을 나누어 새로운 정치단위를 만든 거의 유일한 경우다. 서로 전쟁까지 벌였던 나라들이 자발적으로 외교 일부 권한과 통화, 무역, 환경규제, 사법권 등을 초국가 기관에 이양했다.

정치학자인 저자는 이 독특한 정치 실험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살펴보다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 동아시아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지역 통합이 유럽에서만 성공한 이유를 찾다 보니, 근대 네이션의 형성 원리에서 출발해 중세 크리스천돔의 공통 기반, 유럽 킹덤들의 느슨하고도 촘촘한 네트워크, 로마의 레스 푸블리카, 그리고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됐다는 설명이다. 하나의 질문이 정치 전체를 다시 성찰하는 여정으로 확대된 것이다.

 

조홍식/글항아리/3만3000원

유럽 정치의 구조를 ‘문법’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언어가 기본 규칙을 바탕으로 여러 어족을 만들어내듯, 유럽 정치 문법 역시 여섯 가지 역사적 유형이 서로 결합해 형성됐다. 고대의 폴리스와 레스 푸블리카, 중세의 크리스천돔과 킹덤, 근대의 네이션, 현대의 코스모폴리스다.

특히 연대기상으로는 1000년을 차지하고도 정치학·국제정치학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은 중세를 ‘크리스천돔’이라는 문법으로 복원한다. 중세는 상충하는 원리와 권력이 공존하고 충돌하며 새로운 질서를 실험한 시기였고, 고대 폴리스의 철학적 사고와 기독교적 보편성이 결합하면서 유럽 정치의 또 다른 기층 문법이 만들어졌다. 그리스 철학은 기독교 교리를 정교화하는 데 핵심적 영향을 미쳤고, 기독교는 다시 고대의 정치 문법을 아시아와 아프리카까지 확장시키며 유럽 정치의 외연을 넓혔다.

저자는 시대의 전환을 단절로 보지 않는다. 새로운 정치 형태가 등장할 때 앞선 문법이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변용과 선택, 재조합의 과정을 거쳐 다음 시대를 구성한다고 설명한다. 현대 민주주의와 개인주의, 법 앞의 평등이라는 문법 역시 고대의 철학과 중세의 종교적 혁명성을 매개로 형성된 장기 지속의 유산이다. 예수의 급진적 혁명성은 개인을 공동체의 부속물이 아니라 독립된 주체로 위치시키는 새로운 사고방식을 촉발했고, 이는 근대적 개인주의의 핵심 기반이 되었다. 로마의 정치 문법은 중세의 신성로마제국과 도시 공화국, 근대 미국과 프랑스의 공화정으로 이어져 현대 민주정치의 핵심 원리가 되었다.

근대 네이션의 탄생은 킹덤의 취약성에서 비롯됐다. 네덜란드·프랑스·미국은 타 민족과의 투쟁이 아닌 내부 혁명을 통해 최초의 네이션을 만들어냈고, 자유와 평등이라는 보편 가치가 그 사상적 기반이 됐다.

이 흐름은 현대의 코스모폴리스, EU로 이어진다. EU를 네이션을 넘는 새로운 정치 단위로 규정하며, 다수보다 소수의 권리를 우선시하고, 효율보다 설득을 중시하는 새로운 정치 문법이 실험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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