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잎은 뼈만 남고
우리는 일제히 백숙을 물어뜯는다
백숙은 우리의 구원자
할 말이 없어지면 할 말이 부끄러워지면
젓가락으로 백숙을 뒤적일 수 있도록
백숙은 제 몸을 산산이 펼쳐 놓는다
걔 됐더라 참하니
지 욕심 안 부리고
애가 마음이 딱 됐어
얼굴도 그만하면 됐지 연금 나오지
일단 애가 나대지를 않잖아
형은 나에게 뻐끔뻐끔 손을 올린다
그렇게 모두한테 다 알리면 어떡하니
나는 들은 말을 전달했을 뿐인데
다 같이 백숙 뜯을 땐 아무렇지도 않더니
차에서 보니 또 쪽팔리긴 한가보다
그런 것들로만 피와 살이 이루어져 있다
마지막 관절 하나까지 안으로 굽는
모두가 할 말을 찾는 동안 나는 말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줍는다
-시집 ‘백합의 지옥’(민음사) 수록
●최재원
△1988년 거제 출생. 시집 ‘나랑 하고 시픈게 뭐에여?’ 등 발표. 김수영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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