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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죄를 사하러 온 백숙 [詩의 뜨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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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11-22 06:00:00 수정 : 2025-11-20 19:4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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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원

은행잎은 뼈만 남고

우리는 일제히 백숙을 물어뜯는다

 

백숙은 우리의 구원자

할 말이 없어지면 할 말이 부끄러워지면

젓가락으로 백숙을 뒤적일 수 있도록

백숙은 제 몸을 산산이 펼쳐 놓는다

 

걔 됐더라 참하니

지 욕심 안 부리고

애가 마음이 딱 됐어

얼굴도 그만하면 됐지 연금 나오지

일단 애가 나대지를 않잖아

 

형은 나에게 뻐끔뻐끔 손을 올린다

그렇게 모두한테 다 알리면 어떡하니

 

나는 들은 말을 전달했을 뿐인데

다 같이 백숙 뜯을 땐 아무렇지도 않더니

차에서 보니 또 쪽팔리긴 한가보다

그런 것들로만 피와 살이 이루어져 있다

마지막 관절 하나까지 안으로 굽는

 

모두가 할 말을 찾는 동안 나는 말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줍는다

 

-시집 ‘백합의 지옥’(민음사) 수록

 

●최재원

△1988년 거제 출생. 시집 ‘나랑 하고 시픈게 뭐에여?’ 등 발표. 김수영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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