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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베이 밤의 생동과 정동 [유선아의 취미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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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11-20 23:01:16 수정 : 2025-11-20 23: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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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양의 1996년 작 ‘마작’은 경제적으로 급부상한 대만의 도시 타이베이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암흑가에 큰 빚을 진 사업가가 자취를 감추자 두 명의 조직원이 그 아들인 청년 갱단의 리더, 홍어(당종성)의 뒤를 쫓는다. 홍어를 비롯해 홍콩(장첸), 룬룬(가우륜), 소부처(왕계찬)는 한집에서 지내며 크고 작은 범죄를 모의한다. 낡은 트럭에 동승한 홍어는 핸들을 잡은 룬룬에게 자동차가 줄지어 늘어선 도로에서 한 분홍색 차량을 들이받으라고 지시한다. 소부처의 거짓 예언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다. 한편 마르트(비르지니 르두아앵)는 영국인 남자친구와 재회하기 위해 프랑스에서 무작정 타이베이로 오지만 머물 곳이 없다. 온갖 사람들이 돈을 벌 목적으로 모인 휘황찬란한 환락가에서 마르트는 청년 갱단 중에서 유일하게 영어로 소통할 수 있는 룬룬과 마주친다. 선의로 마르트를 도우려는 룬룬과 다르게 홍어는 마르트를 어딘가로 팔아넘길 생각뿐이다. 홍어의 뒤를 밟던 두 조직원이 룬룬을 사업가의 아들로 오해해 마르트와 룬룬을 납치하는 바람에 상황은 더 꼬이기 시작한다.

 

쩌우스칭의 ‘왼손잡이 소녀’는 에드워드 양이 ‘마작’에서 그렸던 타이베이의 도심과 야시장의 골목이 어지럽게 교차하는 밤의 정동을 이어가고 있는 듯 보이는 영화다. ‘플로리다 프로젝트’, ‘아노라’의 션 베이커 감독이 제작과 공동 각본, 편집을 맡은 이 영화는 세 모녀가 타이베이로 이사 오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야시장에 작은 식당을 열기로 한 엄마 슈펀(저넬 차이)을 도와 첫째 딸 이안(시 유안 마)은 불법 제조약을 파는 가게에서 일하며 아직 어린 둘째 이징(니나 예)을 서툴게 보살핀다. 외할아버지가 어린 이징을 잠시 맡아주던 날, 이징은 외할아버지로부터 ‘왼손을 쓰면 악마를 돕는다’는 미신을 듣고 그 말을 정말로 믿게 된다. 엄마와 이안은 식당을 열어 월세를 납부하고 생활에 보탬이 되기 위해 소란이 멈추지 않는 야시장 귀퉁이에서 각자 고군분투한다. 이들은 새로운 사랑과 만나기도 하고 치졸한 연애사에 복잡하게 얽히기도 한다.

타이베이를 무대로 다른 시대에 제작된 두 편의 영화가 마치 하나처럼 포개져 보이는 이유는 그 낯설면서도 익숙한 공간성 때문일 것이다. 홍어의 모략에서 마르트를 구하기 위해 그를 몰래 자기 집 다락방에 숨긴 룬룬은 밤에도 불이 꺼지지 않는 시장의 작은 노점에서 마르트에게 먹일 음식을 산다. 자기 왼손이 하는 일에 홀린 듯한 이징은 좁고 번잡한 골목을 따라서 가게를 부지런히 누빈다. 에드워드 양의 ‘마작’과 쩌우스칭의 ‘왼손잡이 소녀’에서 마주치는 것은 비단 이것뿐만 아니다. 가족의 애환, 눈부신 도시 야경과 지칠 줄 모르고 펄떡이는 야시장의 매일, 고귀할 것도 없지만 너절할 것도 없는 사랑과 연애에 미신과 범죄가 더해지며 두 영화는 서로 닮은 오래된 활기와 생동을 공유한다.

 

유선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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