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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의 문화가 아닌 공존으로 [이지영의K컬처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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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11-20 23:01:22 수정 : 2025-11-20 23: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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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 뉴저지에서 열린 ‘Korea Brand & Entertainment Expo’는 K컬처가 콘텐츠 유행을 넘어 생활문화 전반의 감각적 체계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줬다. 해외 바이어들은 K뷰티, K푸드, 리빙 제품까지 한국적 감성을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한국 문화가 세계 취향의 일부가 되고 있다는 점은 분명 고무적이다.

 

하지만 이 확산을 단순한 중심 진입의 승리 서사로만 볼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확장하는 문화가 어떤 방식으로 세계와 관계 맺는가다. 과거 제국들은 자신들의 문화를 보편으로 제시하며 타 문화를 주변화했고, 문화의 교류는 힘의 구조 속에서 이루어졌다. K컬처가 세계적 현상이 된 지금, 우리는 이런 폐해를 되풀이하지 않을 가능성을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우선 문화의 상품화가 지워 버릴 것들을 직시해야 한다. 글로벌 시장에 맞춰 단순화되는 과정에서 지역의 역사와 사회적 맥락은 종종 약화된다. 이는 과거 지배문화가 타 문화를 단순화하며 의미를 훼손했던 방식과 닮아 있다. 또한 K컬처의 성장이 누구에게 이익을 남기는가도 중요하다. 글로벌 성과가 대형 플랫폼에 집중되고 지역 창작자와 공동체가 주변화된다면, 이는 또 다른 형태의 문화적 불평등이다.

 

무엇보다 세계가 한국 문화를 일상 속에 받아들이는 지금, 우리는 어떤 문화적 책임을 지고 있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외모나 소비 기준을 강화하거나 젠더·계급·인종의 편견을 재생산하지 않는지, 한국 사회의 현실을 과도하게 미화하지 않는지 점검해야 한다. 지배문화의 문제는 자신을 보편으로 내세우는 데서 시작된다. K컬처가 보여줄 새로운 가능성은 서로 다른 세계를 지우지 않으면서도 연결하는 비지배적 문화의 확산이다.

 

K컬처의 세계화는 우리 시대가 문화에게 부여하는 책임을 시험하는 거대한 장이다. 기존 제국주의 문화가 남긴 상처와 폐해를 되풀이하지 않고 서로 다른 세계가 공존으로 나아갈 수 있는 새로운 문화적 길을 모색한다면, 한류는 규모를 넘어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 자체를 바꾸는 힘으로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증명할 것이다.

 

우리가 바라보는 미래는 한국 문화가 또 하나의 중심이 되는 장면이 아니라 중심이라는 사고방식 자체를 변혁하는 새로운 문명의 기류가 펼쳐지는 순간이기를 바란다. K컬처가 지배의 언어가 아닌 연대의 언어로 세계를 엮어낸다면, 그것은 단지 한 시대의 유행이 아니라 인류 문화사에 새 장을 여는 깊고 긴 울림이 될 것이다.

 

이지영 한국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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