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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직면한 난제… 해답은 과거에 있다

입력 : 2025-11-22 06:00:00 수정 : 2025-11-20 19:47:08
박태해 선임기자 pth122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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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자원고갈·양극화 등
복합위기 시대 혼란겪는 인류
역사 분석 미래전략 활용하는
‘응용역사’ 관점서 실마리 찾아
“미래 재료 과거에 모두 존재…
책은 미래 행동을 위한 도구”

내일을 위한 역사/ 로먼 크르즈나릭/ 조민호 옮김/ 더퀘스트/ 2만1000원

 

기후위기, 자원고갈, 양극화, 불평등 심화 무관용, AI(인공지능) 리스크…. 오늘날 인류는 복합적인 위기의 시대로 비틀거리고 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까. 사회철학자이자 문화사상가인 저자는 이러한 난제를 풀 실마리를 ‘응용역사(Applied History)’ 관점에서 찾고 있다. 응용역사는 인류가 오늘날 직면한 모든 위기를 지난 역사적 사례를 분석해 현재의 정책 결정·사회 갈등·미래 전략에 직접 활용하려는 접근법이다. 그는 지금의 인류가 직면한 시급한 문제로 △지구적 대량이주 시대 모두 함께 사는 관대함을 키우는 방법 △소셜미디어 시대에 정치 양극화와 가짜뉴스에 대처하는 방법 △세계적인 물분쟁 속에서 모두의 물을 얻는 방법 △AI를 효과적으로 통제하는 방법 등을 열거하며 지나간 역사에 얻은 통찰을 통해 그 답을 제시한다.

 

저자는 역사는 단순한 ‘과거 기록’이 현실의 위기를 풀기 위한 지혜의 보고이자 격동의 시기에 생존하고 반영하기 위한 중요한 도구라고 설명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저자는 대량이주 시대인 요즘 세계 곳곳에서 외국인 혐오가 여전한 상황에서 인류가 모두 함께 사는 관대함을 키우는 방법을 중세 에스파냐의 알안달루스 이슬람 왕국의 사례에서 찾고 있다. 무슬림이 지배층이었음에도, 유대인과 기독교인이 ‘콘비벤시아(Convivencia·공존)’라는 이름 아래 수백년간 함께 번영했다. 이곳의 관대함의 핵심은 일종의 ‘강제적 친밀함’이었다. 당시 도시생활은 다양한 직종의 서로 다른 민족공동체가 시장이며 목욕탕, 일터에서 끊임없이 접촉하고 경제적으로 상호 의존할 수밖에 없도록 설계됐기 때문이다. ‘차이’에도 불구하고 함께 사는 것이 가능하다는 인류의 잠재력을 입증하는 좋은 사례로 제시한다. 저자는 관대함이 단지 감정이나 선의가 아니라 제도와 물리적 설계를 통해 의도적으로 조성할 수 있는 사회적 힘이며, ‘상생의 설계’를 통해 공존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최근의 소셜미디어가 빚어낸 정치적 양극화와 가짜뉴스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한 혜안을 저자는 18세기 런던에서 평등하고 숙의적인 공론장을 형성했던 커피하우스의 문화에서 찾고 있다. 단돈 1페니를 내고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신사, 기계공, 귀족 등 계층을 막론하고 공공의 문제에 대해 자유롭고 평등하게 토론하던 이 공간이 바로 건강한 ‘공론장’의 원형이다. 익명성 뒤에 숨어 서로를 비방하는 온라인 공간과 달리, 얼굴을 마주하고 활발한 대화와 숙의를 나누는 커피하우스 문화는 민주주의의 성숙을 이끌었다. 저자는 여기에 알고리즘이 통제하는 테크 기업의 소셜미디어에 맞서 디지털 공론장을 재설계할 방향이 있다고 강조한다. 우리가 할 일은 기술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소수 플랫폼에서 다수의 시민에게 분산시키고 ‘대면 대화’의 문화를 되살리는 것이다. 커피하우스가 그랬듯 빅테크 기업을 분할하여 시장 경쟁을 촉진하고, 공공의 목적을 가진 플랫폼 협동조합을 육성하며, 익명성이 제거된 공간에서 ‘서로 존중하는 대화’를 위한 제도를 마련해서 평등하고 숙의적인 공론장을 다시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로먼 크르즈나릭/조민호 옮김/더퀘스트/2만1000원

인류의 물 위기는 심각한 수준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몇 년간 동부 지역을 중심으로 대형 가뭄이 거듭돼 마시는 물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전 세계적으로는 요르단강 유역, 나일강 유역 등에서 국가 간 ‘물 전쟁’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수자원 민영화는 물값을 폭등시켜 빈곤 계층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저자는 이 물 위기에 대한 해법을 1000년 전 중세 에스파냐의 발렌시아에서 찾는다. 이곳의 대성당 문밖에서 매주 목요일 정오, 수백년간 한 번도 빠짐 없이 열리는 재판소가 있다. 바로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사법기관, ‘물의 법정(Tribunal de las Aguas)’이다. 이 재판소는 중앙정부나 권력자가 아니라 지역 농민들 스스로 대표를 선출하고 물 배분 및 분쟁을 해결해온 ‘수력 민주주의’의 상징이었다.

저자는 물 부족과 분쟁의 근본 원인을 물을 ‘상품’으로 여기는 자본주의적 시각에 있다고 본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노벨상 수상자 엘리너 오스트롬의 ‘공유지(The Commons)’이론을 제시한다. 물은 누구도 사유화할 수 없는 ‘만인의 공동금고’라는 인식 아래 분쟁을 해결하고 협력을 끌어낸 실효적 사례가 있다. 그 한 예가 ‘다뉴브강 보호 국제위원회’로, 강 유역을 공유지로 공동 관리하며 오염을 통제하고 생태계를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 저자는 “우리는 미래를 예측할 수 없지만, 미래를 설계할 재료는 이미 과거에 모두 존재한다”고 강조한다. 책은 과거를 되돌아보는 일의 목적이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미래 행동을 위한 도구라는 점을 새롭게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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