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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친일 논란으로 빛바랜 남인수 위상을 다시 찾게 하고 싶다”… 이동순 시인, ‘가요 황제 남인수 평전’ 국내 첫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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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11-20 07:19:11 수정 : 2025-11-20 08:58:08
박태해 선임기자 pth122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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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요계 반응 주목

시인이자 가요평론가인 이동순(75)이 우리 대중 음악사에서 최초의 ‘가요 황제’로 불렸던 가수 남인수의 삶을 총체적으로 집약한 평전을 출간했다. 한국 대중가요의 원형을 세운 목소리의 주인공인 그가 친일 논란으로 제대로 된 역사적 평가를 받지 못하지만, 사후 60여년 만에 처음으로 펴낸 이 평전 출간을 계기로 그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번에 책을 냈다.

경남 진주시 장재동 새미골에 조성된 ‘가요 황제’ 남인수의 무덤과 추모비. 민속원 제공

‘가요 황제’로 불리며 한국 대중 가요사의 한 축을 이룬 고(故) 남인수(1918~1962)는 1930~50년대를 관통한 대표적 대중가수다. 전통 성음과 신파조 창법을 현대적 감각으로 절충해 독보적 음색을 구축한 인물이다.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 직후까지 이어진 격동의 역사 속에서 그는 ‘애수의 소야곡’,  ‘무너진 사랑탑’, ‘감격시대’ 등 숱한 히트곡을 남기며 당대 청중의 감정과 시대 정서를 대변했다. 특유의 호소력 짙은 창법과 명확한 발성, 곡의 서사를 끌어올리는 표현력 덕분에 그는 ‘국민가수’라는 칭호를 가장 먼저 얻은 대중가수다.

 

책은 남인수라는 인물이 어떻게 ‘대중음악의 황제’로 불리게 되었는지를 다루고 있다. 특히 그의 삶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닌 첫사랑, 이난영과의 질긴 인연에 주목했다. 두 사람은 엇갈리고 또 멀어졌지만, 결국 삶의 종반에 다시 만났고, 서로에게 지극한 사랑과 헌신을 보냈다. 남인수는 그녀의 무릎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었고, 이난영은 눈물 속에서 그의 애창곡을 불러주며 배웅했다. 이 장면은 한국 대중문화사 속에서도 가장 깊은 페이소스를 지닌 스크린이나 다름없다. 그는 “책을 집필하면서 나는 ‘가수’라는 존재, 특히 대중예술인에게 부여된 사명과 의미를 다시 새겼다. 남인수는 단지 노래만 부른 이가 아니었다. 그는 민중과 더불어 울고 웃으며 그들의 슬픔을 노래로써 함께했던 동반자였다”고 설명했다. 

이동순이 말하는 남인수의 생애를 추동하는 힘의 바탕은 이난영에 대한 원초적 사랑이다. 그것은 남인수 삶을 추동하는 저력이었고, 지하수 같은 생명력이었다. 남인수는 그 힘을 작동시켜서 자신의 음악을 굴려 갔으며 ‘가요 황제’의 지위에까지 다다랐다. 결혼과 출산은 각각 다른 사람과 시작했으나 생의 말년에 이르러 두 사람은 극적인 결합을 이룰 수가 있었다. 두 사람이 보인 불굴의 사랑을 그는 책에 녹였다. 이동순은 “한 인물의 화려한 특징만 부각하며 그늘진 부분을 회피하는 것은 옳은 방법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이 평전에서는 남인수 생애의 그늘과 얼룩까지도 진솔하고 충실하게 담으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안타깝게도, 남인수는 한국 현대사를 대표하는 대중가수라는 상징성 만큼, 그의 친일 논란은 예술과 역사적 책임을 어떻게 바라볼 것이냐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남인수는 태평양 전쟁기 조선총독부가 문화·예술계를 전쟁 동원 체제로 묶어냈던 시기, 여러 전시 선전가요 제작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 친일 명단에 이름이 올랐다. 음악계 일각에서는 “전시 체제 하에서 대중가수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매우 제한적이었다”며 남인수에 대한 단정적 평가를 경계한다. 생계가 걸린 예술인의 자리에서 군국주의 선전가요 참여가 불가피했다는 해석이다. 반면에 민족문제연구소 등은 “당시 많은 예술인이 같은 상황에서도 선전 활동을 거부하거나 활동을 중단했다”며 전시 선전가요 참여 자체가 역사적 책임의 근거라고 본다. 이러한 친일 논란은 그의 예술적 성취와 별개로 여전히 완전히 봉합되지 못한 채 그가 타계한 지 6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이동순은 남인수 평전을 출간하면서 “이 모든 현상은 편견과 왜곡이 빚어낸 고정관념 때문이다. 더 심한 경우는 남인수를 매국노 이완용과 동급으로 규정하는 거친 사례도 있었다. 남인수가 군국가요 녹음에 동원된 나이는 불과 25세 전후였다. 한 인간으로서 아직 역사의식이나 분별력이 미성숙한 단계였던 시기이다. 다만 가수로서의 인기가 최고 절정에 다다랐을 때 소속 레코드사에서는 남인수, 이난영 등의 간판급 가수를 일제의 강요에 방패막이로 이용했다. 레코드사의 그런 행태는 매우 비겁하고 비난받아 마땅하다. 남인수에게 죄가 있다면 인기가수였다는 사실 뿐이다. 남인수가 녹음한 군국가요는 그의 전체 발표곡 3% 정도에 불과하다. 그것으로 왜 남인수라는 가수 위상의 전체를 매도하고 부정하려 드는가. 바로 그 부분에서 무리한 편견과 왜곡이 발생하고 그것은 결국 문화파괴로 이어질 위험성마저 안고 있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이젠 끊어야 할 때가 돼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대관절 언제까지 이런 전근대적이고 낙후한 관습에 젖어있을 것인가. 왜 남인수가 발표한 저항적 노래, 민중에게 희망을 주려고 했던 노래엔 눈을 감고 있는가. 이런 소아병적 사고와 행태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일제말 강요로 군국가요 몇 곡 불렀지만, 해방 후 가거라 삼팔선, 이별의 부산정거장 등 기막힌 절창으로 우리 겨레에게 힘과 용기를 주었던 것은 왜 외면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목청을 높였다. 

‘가요황제 남인수 평전’을 펴낸 시인이자 가요평론가 이동순은 “남인순에 대한 나의 국내 첫 평전 출간을 계기로 그에 대한 각종 친일 논란과 왜곡을 바로잡아 1930~50년대 민중의 치진 심신을 위로한 진정한 대중예술인으로서의 그의 위상을 되찾게 하고 싶다”고 밝혔다. 

오랜 기간 남인수의 발자취 추적을 통해 한 대중예술인의 본질과 전모를 드러냄으로써 각종 편견과 왜곡을 바로잡고 그의 위상을 다시 제 자리에 안정되게 두고 싶다는 게 이동순의 확고한 신념이다. 남인수는 한국 현대사를 대표하는 대중가수라는 상징성만큼, 그의 친일 논란과 이를 바로잡고자 하는 이번 평전 첫 출간에 대한 역사·가요계 반응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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