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팔자·서학개미 투자 행렬 속
수출업체 달러 매도 주저 등도 원인
수입물가지수 1.9% 올라 4개월째 ↑
1500원 터치 땐 수출·생산 9%대 ‘뚝’
“대내외 불확실 여전… 당국 개입해야”
원·달러 환율의 천장이 뚫렸다. 한·미 관세협상이 타결되며 대외 경제 불확실성이 일부 해소됐지만, 달러 강세에 원화가 좀처럼 맥을 못 추고 있다. 고환율 장기화는 우리 경제에 고물가·고비용·내수 침체라는 삼중고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자아낸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어두운 터널을 지나온 우리 경제가 이번엔 고환율에 발목 잡힐 위기에 처했다.
18일 서울외환시장에 따르면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지난 13일 장중 1475.4원까지 오르며 7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다음날 외환 당국이 구두 개입에 나선 후 1450원대로 떨어졌지만 주말 이후 다시 오름세를 보이며 이날 전일 대비 7.3원 오른 1465.3원에 주간거래(오후 3시30분)를 마감했다.
지난해부터 이어지고 있는 고환율은 외환위기 때인 1998년 수준을 뛰어넘는다. 올해 들어 지난 14일까지 연평균 환율(주간 거래 종가 기준)은 1415.28원으로, 1998년(1394.97원)보다도 20원 이상 높다. 올해 주간 거래 종가가 1450원을 넘긴 날도 총 50일로, 전체 거래일(211일)의 24%에 달한다. 1450원대 환율이 새로운 기준 이른바 ‘뉴노멀’로 자리 잡는 모양새다.
상대적으로 가치가 하락한 원화는 주요 통화국 중 ‘최약체’로 전락했다. 연합인포맥스에 따르면 이달 들어 원화 가치는 달러 대비 1.38% 하락했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집권하면서 약세가 두드러진 엔화(-0.36%)보다도 낙폭이 컸다. 캐나다달러(-0.08%), 호주달러(-0.06%)도 원화보다는 하락 폭이 훨씬 작았다.
◆줄줄 새는 달러, 원화 약세 고착화
최근 환율 상승의 가장 큰 이유로는 일명 ‘서학개미’들의 해외투자 증가가 꼽힌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이달 들어 14일까지 국내 개인 투자자의 해외주식 순매수는 36억3000만달러, 일평균 2억6000만달러를 기록했다.
반대로 ‘코스피 불장’에 투자했던 외국인 투자자들은 최근 차익 실현을 위해 국내 주식을 팔아치우며 환율 상승을 유발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 투자자들은 이달 들어 14일까지 유가증권시장에서 약 9조1280억원을 순매도했다. 환율이 오르면 외국인 투자자가 이탈하고, 또다시 환율이 오르는 악순환의 반복이다.
환율이 계속 오르자 수출업체들도 달러 매도를 미루는 분위기다. 조영무 NH금융연구소장은 “달러화를 국내 시장에 공급하는 쪽은 수출 기업인데, 이들이 벌어들인 달러화를 요즘 시장에 내놓고 있지 않다”며 “미국 내 투자자금 수요에 대비하거나, 환율이 더 올라갈 것으로 보고 쥐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 기대감이 떨어지는 점도 고환율을 떠받치는 요소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최근 시장은 12월 금리 동결 가능성을 50% 이상으로 관측하고 있다. 원화와 동조성이 큰 엔화가 약세를 이어가고 있는 점 역시 고환율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기업 부담·물가 상승 현실화
통상 환율이 오르면 기업 입장에서 제품의 가격 경쟁력 확보가 가능해 수출이 유리해진다. 또 수출 대금을 원화로 환전할 때 더 많은 금액을 손에 쥐게 된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다.
그러나 중간재·원자재의 해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경제 특성상 고환율은 더 이상 호재가 아닌 ‘재앙’으로 인식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올해 초 주요 업종별 협회 12곳과 함께 조사한 ‘고환율 기조가 주요 산업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조선·자동차·기계를 제외한 대다수 업종이 환율이 오르면 부정적인 타격을 입는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우리나라 수출 주력 업종인 반도체산업에서도 제조원가·해외투자비 상승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다.
한국무역협회가 지난 4월 발표한 ‘2025년도 수출기업 금융애로 및 정책 금융 개선 과제’ 보고서에선 수출 기업 500개사의 최고경영자(CEO) 및 임원들이 수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적정 환율로 평균 1344.9원을 들기도 했다. 현재 환율과 100원 이상 격차가 난다.
무협은 “통상 환율이 상승하면 수출 채산성이 개선될 수 있지만, 동시에 원자재 구매 비용·운임 상승으로 높은 환율이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협상력이 낮은 중소·중견 기업의 경우 수입 원부자재 비용이 증가하는 동시에 환율 상승을 이유로 바이어가 납품 단가 조정을 요청하는 이중고에 시달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고환율에 따른 소비자물가 상승은 이미 현실로 다가왔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지난달 수입물가지수(원화 기준 잠정치·2020년 수준 100)는 138.17로, 9월(135.56)보다 1.9% 올랐다. 7월부터 넉 달 연속 상승했으며, 상승 폭은 지난 1월(2.2%) 이후 9개월 만에 가장 컸다. 수입물가는 통상 1~3개월의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영향을 미친다. 이는 곧 인플레이션 위험 증가를 의미한다.
◆환율 1500원 가능성… 경제 ‘직격타’
시장에선 환율이 머지않아 1500원까지도 오를 수 있다는 우려 섞인 전망이 나온다.
박형중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연내 1430∼1480원 박스권을 예상하지만, 연준 금리 인하 기대가 후퇴하거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관세·규제 위험이 재부각되면 1500원 선을 터치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환율 1500원이 우리 경제에 미칠 악영향은 생각보다 심각하다. IBK 기업은행 경제연구소는 올해 초 발간한 ‘환율상승 시 국내경제 파급효과 분석’ 보고서에서 월평균 환율이 1500원까지 오르면 소비자물가는 3개월 뒤 최대 7.0% 상승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 수출은 9개월 뒤 최대 9.0% 감소, 생산도 7개월 뒤 최대 9.3%가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외환 당국은 우선 1480원에 방어선을 구축하고 시장 개입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앞서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4일 “외환시장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상황”이라며 “가용수단을 적극 활용해 대처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시장에선 외환 당국이 구체적인 움직임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구두 개입 시점을 전후해 실개입으로 추정되는 달러 매도 물량이 나와서다. 일각에선 국민연금이 환율 1480원을 넘으면 환 헤지(위험회피)를 통한 환율 조정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김정식 연세대 명예교수(경제학)는 “대내외 경제 불확실성이 제거되지 않으면 환율이 이른 시일 내에 떨어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며 “경제 타격이 우려되는 만큼, 외환보유고에 부담이 되지 않는 선에서 외환 당국의 개입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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