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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장 강등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관련이슈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입력 : 2025-11-17 15:12:24 수정 : 2025-11-17 15:12:23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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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이 종반으로 치닫던 1952년 5월 경남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전대미문의 일이 벌어졌다. 당시 그곳에는 한국군과 미군 등 유엔군에 붙잡힌 북한군 포로들이 대거 수감돼 있었다. 포로 일부가 자신들에 대한 처우를 문제삼아 단식에 돌입했다. 수용소장인 미 육군 프랜시스 도드 장군(준장)이 포로 대표단의 면담 요청을 덜컥 받아들인 것이 패착이었다.

 

포로들은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도드와 대화를 나누는 척하다가 그의 몸을 붙잡고 잽싸게 철조망 안으로 밀어넣었다. 포로수용소장이 포로들의 포로가 된 셈이다. 미군이 포로들의 요구 사항을 수용하며 도드는 풀려났으나, 격분한 미 행정부는 그를 준장에서 대령으로 1계급 강등 조치했다. 후임 소장으로 부임한 헤이든 보트너 준장이 “나도 언제 강등을 당할지 모른다”며 대령 때 달고 다닌 계급장을 한동안 간직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 해군 태평양함대 사령관을 지낸 체스터 니미츠 제독은 일본을 무찌른 공로로 4성(대장)을 넘어 5성(원수)까지 진급했다. 그 이름은 오늘날 미 해군이 보유한 원자력 추진 항공모함에 붙여져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다.

 

반면 니미츠의 전임자 허즈번드 킴멜 제독(대장)은 과연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1941년 12월 7일 일본군의 하와이 진주만 공습 당시 태평양함대 사령관을 맡고 있던 그 바로 군인이다. 일본 군용기들이 진주만 상공을 누비며 미군 기지를 마음껏 유린한 그날을 프랭클린 루스벨트 당시 대통령은 ‘국치일’(Day of Infamy)로 규정했다. 대장이던 킴멜은 계급장의 별 네 개 중 두 개를 잃고 소장으로 내려앉은 뒤 실의 속에 군 생활을 마감했다. 다만 그 시절 태평양함대 사령관은 그 보직을 맡고 있는 동안에만 대장 예우를 받는 일종의 ‘임시 대장’이었다는 점에서 원래 소장이던 킴멜이 강등을 당한 것은 아니라는 시선도 존재한다.

김영삼(YS)정부 시절인 1994년 9월 전국 검사장 회의가 열려 김두희 당시 법무부 장관이 전국에서 모인 검사장급 이상 검찰 간부들에게 훈시를 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강등 얘기를 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이들 가운데 한 명이 김익진 전 검찰총장이다. 그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듬해인 1949년 6월 제2대 검찰총장에 임명돼 딱 1년 재임했다. 총장에서 물러난 뒤 그만둔 것이 아니고 총장보다 아래인 서울고검장으로 전보됐다. 왜 그랬을까. 극우 성향의 ‘대한정치공작대’라는 단체가 있었다. 그 소속 대원들이 무고한 사람들을 붙잡아 고문한 뒤 ‘빨갱이’로 몰아가려다 발각되는 일이 벌어졌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관련자들을 기소하지 말라’는 취지의 지시를 내렸으나, 김 총장이 “현행법상 불기소 처분은 불가능하다”며 거부했다. 그렇게 고검장으로 강등을 당한 김 전 총장은 오늘날 올곧은 법조인의 표상으로 통한다.

 

법무부가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평검사급 보직으로 보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항소 포기 반발을 ‘항명’이자 ‘국기 문란’으로 규정한 더불어민주당의 강력한 요구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이를 두고 때아닌 강등 논란이 벌어져 나라가 시끄럽다.

 

현행법상 ‘검사장’은 계급이 아니고 지방검찰청 또는 고등검찰청 기관장 등을 일컫는 보직 명칭일 뿐이다. 따라서 검사장급 보직에 있던 사람을 주로 평검사가 보임되는 자리로 발령한다고 해서 ‘계급이 낮아진다’는 뜻의 강등에 해당한다고 단정할 순 없다.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가 밤에도 상당수 사무실이 불을 밝힌 채 업무를 하는 모습이다. 오른쪽의 붉은색 ‘진입 금지’ 표지판이 요즘 검찰이 처한 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문제는 그 정치적 의미다. 문재인정부 시절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징계 등으로 망신을 안기려 했던 정부·여당의 시도는 되레 윤 총장한테 ‘올곧은 법조인’, ‘순교자’ 등 이미지를 선사해 그가 장차 대통령이 될 길을 닦아 주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재명정부에 의해 검사장에서 그보다 훨씬 아래 직급으로 ‘강등’을 당하는 검사들이 생겨난다면, 이들이 앞으로 어떻게 변신할 것인지 누가 알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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