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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진 前 한예종 총장 “韓, 오케스트라 수준 높여야 클래식 음악 강국으로 도약” [세상을 보는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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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11-12 06:00:00 수정 : 2025-11-11 20:02:26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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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첫 리즈 콩쿠르 우승 김선욱 지도
다듬지 않은 보석 ‘재주’를 잘 가다듬어
‘아름답구나’ 느끼게 만드는 게 교육자
곡이 아닌 사람을 가르치는 것이 목표

콩쿠르가 음악 교육 전부처럼 여겨져
하나의 관문으로 음악가 평가는 안 돼
콩쿠르에 과도한 관심 갖지 않길 바라
연주만으로 생활 가능한 환경됐으면

피아니스트 김선욱(37)이 리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 출전한 2006년의 일이다. 영국 리즈에서 3년마다 열리는 리즈 콩쿠르는 쇼팽 콩쿠르(폴란드),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벨기에), 차이콥스키 콩쿠르(러시아) 등과 더불어 세계적 권위를 자랑한다. 당시 18세 앳된 대학생이던 김선욱의 입상을 위해 스승인 김대진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음악원 교수가 ‘맨투맨’ 지도를 자임하고 나섰다. 대회 날짜가 다가오며 사제는 미국 뉴욕에서 말 그대로 합숙 훈련에 돌입했다.

김대진 전 한예종 총장이 서울 서초구 한예종 음악원 캠퍼스 내 연구실의 피아노 앞에 앉아 세계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 전 총장은 “어떤 곡을 피아노로 잘 치는 법은 요즘 유튜브 동영상만 검색해도 찾을 수 있다”며 “교육자의 역할은 곡이 아니고 사람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문 기자

같이 지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하루는 김 교수가 우연히 제자의 휴대폰을 보게 됐다. ‘악마 쌤(선생님)’. 전화번호부에 자신의 이름이 그렇게 저장돼 있는 것을 봤을 때의 느낌이란! “음악 교육이 거의 다 1 대 1 레슨이잖아요. 때로는 따끔한 충고도, 때로는 따뜻한 격려도 필요하죠. 그런데 이상하게 저는 격려나 위로보다는 무서운 얘기만 자꾸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웃음) 그래도 선욱이는 그 어려운 과정을 굉장히 잘 거쳤어요.” 그해 김선욱은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인으로는 처음 리즈 콩쿠르에서 우승하는 기록을 세웠다. ‘악마 같은 선생님’한테 제대로 배운 것이 나름 큰 역할을 했음이 분명하다.

 

미국 줄리어드 음악원을 졸업하고 1994년 한예종에 부임한 김 교수는 한국을 대표하는 피아니스트다. 손열음, 김선욱, 문지영, 박재홍 등 스타 피아니스트를 길러낸 교육자로 유명하다. 2005년에는 지휘 분야에도 데뷔해 수원시향, 창원시향 등 상임 지휘자를 지냈다.

2021년 8월 한예종 9대 총장에 취임하며 교육 행정가로 변신했던 그가 4년 임기를 마치고 제자와 청중 곁으로 돌아왔다. 한예종이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국립대인 만큼 총장도 매년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해야 하는 등 바쁘고 고달픈 자리다. 이임사에서 “인고의 시간이었지만, 제 삶에서 가장 값지고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회상한 김 교수를 지난 5일 서울 서초구 한예종 음악원 교정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일선 교수 복귀 후 처음 언론에 보도된 인터뷰 기사가 ‘호랑이 선생님이 돌아왔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동의하나.

“공연하는 순간은 무의식에 가깝다. 이성적 판단을 내리거나 사고 능력을 발휘하기보다 감각적으로 느끼고 표현하는 것이 곧 연주다. 그런데 거기에 수정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어떻게 고쳐야 할까. 학생이 무심결에 하는 행동 하나 하나가 연주에 다 묻어나기 마련이다. (수정이 필요한데도) 자기 감각대로만 계속 연주하는 학생이 있다면 따끔한 충고가 필요하다. 결국 학생이 선생을 얼마나 신뢰하느냐가 중요한 듯하다.”

―한예종에 입학할 수준의 학생이라면 이미 자기 실력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할 텐데.

“지도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장점을 살려주는 방법과 단점을 보충하는 방법이 그것이다. 타고난 장점은 노력해 얻을 수 있는 게 아니고 없어지지도 않는다. 반면 단점의 보완은 오직 학교에서만 가능하다. 졸업하고 나면 언제 단점을 보완할 기회가 있겠는가. 흔히 외국은 ‘장점을 살려주는’ 스타일의 교육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혹자는 ‘한국에선 뭔가 뒤처진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외국에 나갔더니 탁 트이는 느낌이 들더라’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외국 학생들은 콩쿠르에 출전할 때 자신의 장점만 보여주는 곡 위주로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누구나 장점은 제한적이고 생명력도 길지 않다.”

예술 하면 다들 ‘재주’라는 단어부터 떠올릴 법하다. 김 교수는 재주를 “다듬지 않은 보석”이라고 불렀다. 누군가는 진가를 금방 알아볼 수 있겠으나, 모르고 그냥 지나치는 사람도 많을 것이란 뜻으로 들렸다. 투박하기 그지없는 원석(原石)을 잘 가다듬어 누구나 ‘아, 정말 아름답구나’ 하고 감탄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교육자의 역할인 것일까. 김 교수는 이를 “주관적인 재주를 객관적인 틀에 담는 과정”이라고 표현했다.

―한예종 졸업생, 재학생 등을 비롯한 한국의 음악 영재들이 세계 주요 콩쿠르를 휩쓸고 있다.

“음악을 스포츠와 비교하는 분들이 많다. 정해진 시간에 무대에 올라 주어진 환경 아래에서 기량을 보여줘야 한다는 점은 둘이 비슷하다. 그런데 운동 경기는 점수라는 객관적 기준이 있는 반면 음악은 점수를 부여한다는 것 자체가 좀…. 심사위원의 주관적 평가에 너무 좌우된다. ‘스포츠 종목 중에서 피겨스케이팅 심사 점수도 주관이 개입된다’고들 하지만, 음악 콩쿠르는 그런 정도의 배점 기준조차 없다. 정말 잘하는데 (입상이) 안 되는 친구들이 참 많다. 언제부터인가 콩쿠르가 음악 교육의 목표인 것처럼 여겨지고 또 ‘콩쿠르에 입상해야만 음악적으로 인정받고 앞으로 활동할 길도 생긴다’라는 생각이 만연한 듯해 걱정스럽다. 피아노 콩쿠르 심사를 오래한 어느 지인으로부터 ‘요즘 출전자 일부가 너무 자극적으로 강하게 연주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라는 얘기를 들었다. 이는 음악보다 연주자 자신을 앞세운 것으로, 곡을 잘못 이해한 결과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음악도 자극적인 것을 요구하는 시대라고나 할까.”

―그래도 현실적으로 콩쿠르를 무시할 순 없지 않은가.

“코로나19 대유행 시절의 일이다. 국제 콩쿠르가 줄줄이 취소되는 가운데 학생들이 둘로 나뉜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먼저 한 부류의 학생들은 ‘기분이 좋아졌다’고 했다. 콩쿠르 출전 준비로 인한 부담이 사라지니 자신이 좋아하는 곡들 위주로 연주할 수 있게 되어 그렇다는 것이다. 반면 다른 부류의 학생들은 ‘우울해졌다’고 했다. 출전을 꿈꾼 콩쿠르가 취소되면서 ‘내가 연주하는 목표가 사라졌다’는 느낌이 들더라는 것이다. 내가 콩쿠르에 입상한 제자들에게 하는 얘기가 있다. ‘너에 대한 평가는 지금 내려지지 않는다. 훗날 어떤 음악가가 돼 있느냐로 평가가 이뤄질 것이니, 이제 막 하나의 관문을 통과했다고 해서 곧 목표를 달성한 것은 아니다.’ 젊어서 콩쿠르 1등 했다고 70대, 80대에도 계속 훌륭한 연주자로 남아 활동할 수 있을까. 우리 사회가 콩쿠르에 필요 이상의 과도한 관심을 갖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난 8월 한예종 총장 이임식에서 김 교수는 작곡가 베토벤 그리고 슈베르트의 곡을 직접 피아노로 쳤다. 그 뒤 교직원과 학생들을 향해 “인문학적 사유와 창의성을 지닌 예술가를 키우기 위해 더 깊은 혁신이 필요하다”며 “오늘 연주한 베토벤의 한계를 넘으려는 의지, 슈베르트의 아름다움을 끝까지 추구한 마음처럼, 이 정신(예술의 소명)을 굳건히 이어가 달라”고 당부했다. 4년 전 총장 취임 직후 가진 언론 인터뷰에서 그가 한국은 아직 클래식 음악 강국이 아니라며 “클래식 강국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단계”라고 지적한 것이 떠올랐다.

―‘K클래식’이란 말도 생겨났지만 클래식 음악을 비롯해 한국 문화 전체, 이른바 ‘K콘텐츠’가 대세인 시대가 됐다. 한국은 이제 클래식 강국이 되었나.

“(4년 전과 비교해)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국내 클래식 음악가 가운데 연주만으로 생활이 가능한 이가 있을까. 대부분 교수 같은 직함을 갖고 음악 교육계에 몸담고 있지 않은가. 지금처럼 연주계와 교육계가 혼합돼 있어선 곤란하다. 연주계와 교육계가 서로 나뉘어 운영돼야 한다. 일본이 분리 형태에 비교적 가까운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만큼 음악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다는 뜻이다. 두 번째로 우리가 어떤 나라를 ‘클래식 음악 강국’이라고 부를 때 그 나라 오케스트라의 수준이 가장 중요한 잣대가 되는 것이 보통이다. 음악 영재가 많고 적음을 떠나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오케스트라가 있는지가 관건인 셈이다. 한국도 오케스트라 단원의 급여와 사회적 평판을 올림으로써 훌륭한 연주자들이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게끔 유인할 필요가 있다. 세 번째로 한국은 세계적 네트워크를 지닌 기획사가 일본이나 중국과 비교해 턱없이 부족하다. 우리 연주자가 해외로 진출해 외국 음악 애호가들 앞에서 공연하려면 이를 뒷받침할 기획사의 역할이 절실하다. 이제 기부금 제공 등 후원도 연주자 개인이 아니고 기획사를 대상으로 이뤄질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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