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발생한 납치 사건에 책임 있어”
2015년 레바논 당국에 체포돼 구금 생활
최근 보석금 13억원 내고 가까스로 석방
리비아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1942∼2011)의 막내아들 한니발 카다피(50)가 레바논에서 약 10년의 구금 생활을 한 끝에 풀려났다. 레바논 당국은 자국 시아파 성직자 납치 사건의 책임을 물어 지난 2015년 한니발을 체포했다. 문제는 해당 납치 사건이 일어났을 때 한니발을 겨우 두살배기 유아였다는 점이다.
10일(현지시간) BBC 방송에 따르면 한니발은 최근 레바논 당국에 90만달러(약 13억원)의 보석금을 내고 석방됐다. 레바논 법원은 지난 10월 무려 1100만달러(약 160억원)의 보석금을 제시했으나, 한니발 측이 “금액이 과하다”며 항소한 결과 보석금 액수가 크게 줄어든 것으로 전해졌다.
한니발의 법률 대리인을 맡고 있는 로랑 바이욘 변호사는 AF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10년간 지속된 악몽이 비로소 끝났다”고 말했다. 바이욘은 한니발이 재판 등 적법 절차를 거치지 않고 무려 10년 동안이나 임의로 구금된 점을 거론하며 “이는 레바논 사법부가 전혀 독립적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한니발의 향후 행보에 대해 “곧 레바논을 떠나 다른 목적지로 옮길 것”이라고 했으나, 행선지가 어디인지에 관해선 “극비 사항”이라며 입을 다물었다.
한니발의 아버지인 카다피가 리비아를 통치하던 시절인 1978년 8월 레바논의 시아파 성직자 무사 알사드르(당시 50세)가 실종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알사드르는 카다피 정권의 초청을 받고 리비아를 방문하는 도중 연락이 끊겼는데, 레바논 정부는 카다피가 비밀리에 알사드르의 살해를 명령한 것으로 의심했다. 리비아 측은 “알사드르 일행은 리비아 일정을 마치고 이탈리아로 떠났다”며 자국과는 무관한 일이란 주장을 폈다. 이는 두 나라 간의 심각한 외교적 갈등으로 비화했다.
알사드르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현재까지 명백히 드러난 바 없다. 2011년 리비아 반군이 수도 트리폴리를 장악하고 카다피 일당을 축출한 뒤 알사드르로 추정되는 남성 시신이 발견되긴 했다. 그러나 유전자(DNA) 정보 분실 및 훼손 등으로 정확한 신원 확인은 불가능한 상태다.
2011년 카다피 정권 몰락 후 한니발은 시리아로 도주했다. 그는 아버지 생전에 누가 절대 권력자 아들이 아니랄까봐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지속해 악명이 매우 높았다. 한니발은 2015년 레바논의 무장 단체에 의해 납치되었으며, 그의 신병을 넘겨받은 리비아 당국은 재판 절차도 없이 구금에 처했다. 리비아 당국은 한니발이 1978년 알사드르 납치 사건에 책임이 있다는 이유를 들었으나, 1975년 9월 태어난 한니발은 사건 당시 고작 두살배기였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졌다. 오죽하면 국제 인권단체들이 나서 레바논을 비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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