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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켈과 싸우는 메르츠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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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11-04 14:04:08 수정 : 2025-11-05 13:27:29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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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메르츠(70) 독일 총리는 기독민주당(CDU) 소속이다. 보수 성향이 뚜렷한 CDU는 자매 정당인 기독사회당(CSU)과 연합해 2005년부터 2021년까지 16년간 여당으로 군림했다. 독일 같은 의원내각제 국가는 유력 정치인이 재무부, 내무부, 외교부 등 주요 부처 장·차관을 거쳐 총리에 오르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올해 5월 총리로 취임한 메르츠의 경력을 보면 CDU 의원이 전부다. CDU에서 원내대표처럼 유의미한 당직을 맡은 일은 있어도 내각의 일원으로 국정을 직접 담당한 경험은 없다. CDU·CSU 연합이 집권하는 동안 각료 임명권을 쥔 이가 앙겔라 메르켈(71) 전 총리였다는 점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왼쪽)와 프리드리히 메르츠 현 총리. 게티이미지

메르켈과 메르츠는 CDU 당원이란 점 말고는 공통점이 거의 없다. 둘은 CDU가 야당이던 2000년대 초부터 당내 대표적 라이벌이었다. 동·서독 통일 이전의 동독을 대표하는 여성 정치인 겸 과학자 메르켈은 ‘상품성’이 탁월했다. 이는 서독의 공무원 집안에서 유복하게 자라나 변호사가 되는 등 순탄한 삶을 살아온 메르츠로선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메르켈만의 강점이었다. 메르츠보다 늘 한발짝 앞서 나간 메르켈은 CDU 대표를 거쳐 2005년 총리가 되었다. 그리고 16년간 권좌에 있으면서 메르츠에겐 장관 한 자리 주지 않고 철저한 견제로 일관했다. 절치부심한 메르츠는 몇 차례 CDU 당권에 도전했으나, 매번 총리 메르켈이 미는 인사한테 밀려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2021년 12월 메르켈이 총리직 사임과 더불어 정계에서 은퇴한 뒤에야 메르츠에게 기회가 왔다. 그는 선거에서 패배해 야당으로 전락한 CDU의 새 대표가 됐다. 그리고 올라프 숄츠 총리가 이끄는 사회민주당(SPD) 정권의 진보 정책을 비판하는 선봉장 노릇을 자임했다. 대외적으로는 러시아의 침략에 맞서 싸우는 우크라이나를 위한 군사 지원 확대 방침을 밝히며 무기 제공에 소극적인 숄츠 정부와 차별화를 꾀했다. 국내 정책에선 독일로 이주하려는 외국인들에게 관대한 숄츠 내각의 ‘순진함’을 조롱하며 국경 관리 강화를 천명했다. 이는 ‘정통 우파’를 자처하는 CDU 지지층을 잠식하며 세력을 키우는 극우 정당 독일대안당(AfD)의 도전으로부터 보수의 정체성을 지켜내기 위한 고육책이기도 했다.

정계 은퇴 이후인 2024년 70회 생일을 맞은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왼쪽)가 당시 CDU 대표이던 프리드리히 메르츠 현 총리로부터 축하의 꽃다발을 받고 있다. 이는 2000년대 초부터 20년 넘게 당내 앙숙으로 지낸 두 사람의 화해를 상징하는 장면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올해 메르츠의 70회 생일(11월 11일) 잔치에는 메르켈이 불참키로 함에 따라 이런 훈훈한 광경을 볼 수 없게 됐다. SNS 캡처

총리가 된 메르츠는 CDU 그리고 독일 정부에서 메르켈의 유산을 완전히 지우려는 기색이 역력하다. 2015∼2016년 시리아 내전으로 생겨난 난민 중 100만명을 독일이 수용한 메르켈의 결단은 당시만 해도 칭송의 대상이었으나, 메르츠에겐 독일 이민 정책의 근간을 훼손한 ‘적폐’에 불과한 듯하다. 그는 3일 연설에서 내전 발발의 단초가 된 시리아 독재 정권이 2024년 12월 이미 무너진 점을 지목했다. 그러면서 독일에 거주하는 시리아인들을 겨냥해 “내전이 끝났으니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라”며 “귀국을 거부하면 강제 추방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메르츠 정권이 몇 년이나 더 갈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메르켈로선 요즘 ‘권력무상’(勸力無常)이란 말의 의미를 제대로 체감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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