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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의 대신 맞춤법 교정·정책 패싱 수두룩… 사실상 무력화 [심층기획-국가경찰委 새판 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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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11-03 18:15:33 수정 : 2025-11-03 21:12:59
김승환·안승진·소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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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거수기가 된 위원회

원안 의결 줄고 수정 의결 늘었지만
자구 고치고 띄어쓰기 등이 대부분
경찰청 정책들, 보고 없이 수립 많아
“이미 결론 정한 채 안건 제출식 운영”

경찰 “사전검토 영향 원안 의결 많아
국경위 경계해 정책·보고 준비” 반박

‘동사와 목적어 사이 거리가 먼 문장에서 목적어 위치를 동사 앞으로 이동.’

 

이는 지난달 20일 열린 국가경찰위원회(국경위) 정기회의에서 심의·의결한 ‘범죄수사규칙’ 일부개정훈령안 수정 내용 중 일부다. 조문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조항 내 목적어를 옮긴 것이다.

국가경찰위원회와 경찰청 관계자가 지난달 20일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날 회의에선 경찰복제 개선 결과보고 등 안건 8건에 대한 심의·의결을 진행하거나 보고를 받았다. 경찰청 제공

직전인 9월29일 열린 정기회의에서도 심의·의결 안건 6건이 수정됐는데 대부분이 ‘자구 수정’이었다. ‘디지털 증거의 처리 등에 관한 규칙’ 일부개정훈령안의 경우 조문 내 ‘피압수자 등’이라 적힌 걸 ‘피압수자등’으로 띄어쓰기만 수정됐다.

 

국경위가 안건 10건 중 6건 이상을 경찰이 올린 그대로 의결하고 있는 가운데 그나마 회의에서 수정을 거치는 경우도 대부분 그 내용보다는 자구를 고치는 수준에 그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청 내 법무계나 외부기관인 법제처가 할 일에 국경위 역량의 상당 부분이 투입되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전문성 부족, 별도 사무기구 부재 등으로 인해 국경위가 사실상 ‘제2법무계’로 전락했다는 평가를 내놨다.

 

◆안건 수정 증가?… 대부분 자구 수정

 

국경위가 올라온 안건을 원안대로 의결하는 비율은 2022년 이후 완만한 감소세를 보여 10%포인트 가까이 줄었고 대신 수정의결은 그만큼 늘었다.

 

3일 최근 5년간 작성된 국경위 회의록 121건을 전수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원안의결 비율은 2022년 68.8%로 고점을 찍은 이후 서서히 줄어 올해 1∼10월 59.6%를 기록했다. 반대로 수정의결 비율은 2022년 26.8%에서 올해 1∼10월 38.5%까지 올랐다.

 

추이만 보면 국경위의 권한 행사가 늘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수정 내용을 따져보면 띄어쓰기, 윤문 등 수준으로 국경위 본래 기능과 동떨어진 게 대부분이다. 이는 경찰청이 사전 검토한 것으로 위원들에게 제출해 최종 의결한다는 게 경찰 측 설명이다.

 

회의록에서는 자구 수정을 두고 위원 간 이견을 노출한 경우도 확인된다.

 

지난 7월21일 열린 정기회의에서 ‘외국경찰 등과 교류협력약정 체결 규칙’ 전부개정훈령안을 논의하면서 훈령 이름 중 ‘외국경찰 등과’를 ‘외국경찰 등과의’로 고쳐야 하는지 여부를 두고 논의가 오갔고, 결국 일본에서 온 어법 영향이라는 등 이유로 조사 ‘의’를 뺐을 뿐이다.

◆‘패싱’·‘안건 누락’… 국경위 무력화

 

회의록 곳곳에서는 주요 사안이지만 손도 대지 못한 사례도 여럿 확인됐다. 국경위가 경찰에 사실상 ‘패싱’ 사례로 볼 수 있다며 문제 제기하거나 안건 누락, 늑장 보고 등을 지적한 기록을 통해서다.

 

지난해 11월4일 정기회의에서는 ‘경찰 인권보호 업무체계 개선계획’이 국경위 보고 없이 수립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경찰이 이 회의에 ‘경찰 인권보호규칙’ 일부개정훈령안을 올렸는데, 정작 이 개정 배경이 된 개선계획엔 국경위가 어떤 관여도 하지 못한 것이다.

 

사실상 국경위를 건너뛰고 주요 정책을 대외적으로 공표해 문제가 된 사례도 있었다.

 

2023년 10월4일 정기회의에서 그해 9월 경찰이 발표한 ‘집회·시위 문화 개선 방안’에 대해 국경위 측이 “국경위를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인지 궁금하다”고 했다. 이는 윤희근 당시 경찰청장이 국경위 보고 없이 심야시간 집회·시위 금지 등을 발표한 데 대해 불편한 기색을 드러낸 것이다.

 

경찰이 사실상 결론을 정한 채 안건을 올리는 데 대한 문제 제기도 확인됐다.

 

올 4월7일 정기회의에서 ‘경찰청과 그 소속기관 직제’ 안건을 다루면서 국경위는 “직제 개편 결론을 정한 후 보고하면 국경위 심의·의결권이 제한되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최종술 동의대 교수(경찰행정학)는 “경찰청에서 이미 결정한 사안을 형식적으로 기안해서 국경위에 제출하는 식으로 운영되는 형편”이라고 했다.

 

다만 경찰은 이런 지적에 대해 회의록만으로 평가할 수 없는 국경위의 ‘순기능’이 존재한다고 했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청의 모든 기능이 국경위 심의·의결을 거친다고 하면 더 조심하고 경계해 정책이나 보고를 준비한다”며 “문서만으로 확인할 수 없는 국경위와 경찰 간 긴장 관계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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