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이면 2008 베이징 올림픽 9전 전승의 우승 신화의 대위업도 다시 뒤집어 봐야하지 않나 싶을 정도다. ‘믿음의 야구’라고 쓰고 고집이라 읽어야 하지 않을까. 더 믿고 가야할 때는 믿지 않고, 믿음을 접어야 할때는 계속 믿었다가 낭패를 보는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개인 통산 다섯 번째 한국시리즈마저 준우승 위기에 몰린 한화 김경문 감독에 대한 얘기다.
 
 
            김경문 감독이 이끄는 한화는 30일 대전 한화생명 볼파크에서 열린 2025 KBO 한국시리즈(7전4승제) 4차전에서 4-1로 앞서다 9회에만 대거 6점을 내주며 4-7로 대역전패를 당했다. 잠실 원정에서 1,2차전을 내준 뒤 대전 홈에서 치른 3차전을 1-3으로 뒤지다 7-3으로 역전해내며 시리즈 분위기를 바꾸는 듯 했던 한화는 이날 패배로 벼랑 끝으로 몰렸다. 남은 3경기를 모두 이겨야만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위업을 이뤄낼 수 있다.
한화로선 다 잡은 경기를 놓쳤다. 그 기저엔 김경문 감독의 ‘선택적 믿음의 야구’가 있다.
 
 
            이날 한화 선발로 나선 라이언 와이스는 그야말로 눈부신 호투를 펼쳤다. 3-0으로 앞선 8회에도 마운드에 올라 박해민과 홍창기를 연속 삼진으로 솎아냈다. 투구수 115개. 경기 뒤 인터뷰를 통해 한화 벤치와 와이스 간의 설정한 한계 투구수는 115개였다는 게 드러났다. 와이스는 115구를 소화했지만, 벤치를 향해 손짓했다. 나오지 말라고. 더 던지겠다는 강한 의사표현이었다. 마치 메이저리그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맥스 슈어져가 떠오르는 장면이었다.
그러나 와이스는 2구째 공을 통타당해 신민재에게 2루타를 허용했다. 김경문 감독과 한화 벤치는 움직였다. 와이스의 강판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3-0으로 앞서던 경기가 4-7로 뒤집어질줄은.
 
 
            결과론이지만, 김경문 감독과 한화 벤치가 와이스를 믿고 더 갔으면 어땠을까. 김경문 감독은 후속 타자가 좌타자인 김현수, 문보경임을 감안해 좌완 김범수를 올리며 ‘좌우놀이’를 시전했지만, 김범수는 김현수, 문보경에게 연속 안타를 맞으며 스코어는 3-1, 2사 1,2루에 몰렸다. 117구를 던진 와이스의 공이 이제 갓 마운드에 오른 김범수보다는 더 좋았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급해진 김경문 감독과 한화 벤치는 마무리 김서현의 조기 투입을 결정했다. 타석엔 한국시리즈 내내 무안타로 극악의 부진에 시달리던 오스틴 딘. 김서현은 공 1개로 오스틴을 2루 뜬공으로 처리하며 급한 불을 껐다. 한화 타선은 8회 공격에서 최재훈의 적시타로 1점을 추가하며 4-1을 만들며 김서현의 어깨를 가볍게 해줬다.
 
 
             
 
            그러나 오판이 있었다. 전날 열린 3차전에서 김서현이 1.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낸 것에 김경문 감독과 한화 벤치는 지나치게 고무되어 있었다는 것. 다만 김서현의 3차전 투구를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불안함 투성이었다. 8회 1사 1,3루에 올라왔다가 김서현은 오스틴을 상대로 0B-2S를 잘 잡아놓고도 말도 안 되는 폭투로 3루 주자에게 거저로 홈을 허용했다. 9회에도 안타와 몸에 맞는 공을 허용하며 1,2루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문성주의 병살타 엔딩으로 인해 별다른 큰 문제 없이 승리를 지켜냈지만, 분명 정상은 아니었다.
9회에도 마운드에 오른 김서현은 선두타자 박해민에게 볼넷을 내줬다.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었다. 3점차 리드였으니. 그러나 김서현은 무사 1루에서 타석에 들어선 박동원에게 투런포를 허용하고 말았다. 4-3. 이제 턱밑까지 LG가 쫓아왔다.
 
 
            한국시리즈와 같은 단기전에서는 당장 눈앞의 1승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절대선’이다. 그러나 김경문 감독은 와이스는 믿지 못한 반면 김서현은 너무 믿었다. 박동원에게 투런포를 맞았음에도 김서현을 또 믿었다. 결국 김서현은 천성호를 유격수 땅볼로 잡아냈으나 박해민에게 볼넷을 내주고 동점 주자를 내보냈다. 그제서야 김경문 감독은 김서현에 대한 믿음을 접고 투수를 박상원으로 바꿨다.
문제는 박상원도 흔들렸다는 점이다. 홍창기를 상대로 0B-2S에서 가운데로 직구를 넣었다가 안타를 맞아 1사 1,2루로 몰렸다. 신민재의 땅볼로 2사 2,3루. 타석엔 김현수. LG 타선 중 타격감이 가장 좋은 선수 중 하나인 데다 1루도 비었으니 거를 수도 있었지만, 한화 벤치는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박상원은 2B-2S에서 최재훈이 일어서서 하이 패스트볼을 요구했으나 정직하게 가운데 낮은 코스로 직구를 던졌고, 포스트시즌에서만 100개가 넘는 안타를 때려내며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은 김현수가 놓칠리 없었다. 잡아당긴 타구는 1,2루 간을 뚫었고 주자 2명이 모두 홈을 밟으며 LG가 5-4 역전에 성공했다.
 
 
            김경문 감독은 또 다시 소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격으로 마운드를 한승혁으로 바꿔봤지만, 한승혁마저 문보경과 오스틴에게 적시타를 두들겨 맞았고, 결국 한화는 4-7로 역전패해 시리즈 1승 3패 벼랑에 몰렸다.
올 시즌 최고의 투구를 보이던 와이스. 4차전에 나왔으니 앞으로 남은 3경기에서 활용하기 힘든 것을 감안하면 130구까지 던지게 하는 과감함도 필요했지만, 김경문 감독은 그를 믿지 않았다. 대신 지난 1일 정규리그 SSG전에 투런포 두 방을 맞고 한화의 타이브레이커 성사 가능성을 없애버렸고, 삼성과의 플레이오프에서도 극적인 동점 쓰리런 등 주구장창 두들겨 맞았던 김서현에게는 전날 3차전에서 보여준 딱 한 번의 호투에 지나치게 믿음을 준 결과가 4차전의 대참사와 같은 역전패가 되어 돌아왔다.
 
 
             
 
            경기 뒤 김경문 감독은 정규시즌 막바지부터 불안한 모습을 보였던 김서현을 마무리로 기용한 점을 지적하자 김 감독은 “맞고 나서 (결과로) 이야기하는 데는 할 말이 없다. 8회에는 잘 막았다”고 반박했지만, 틀렸다. 야구는 8회가 아니라 9회까지 막아야 이기는 스포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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