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화전가’ 우리말 오페라로 초연
안동 사투리의 생생한 음율감 인상적
故 박태현 작곡가 우리말 동요 기반
성남문화재단 ‘바람의 노래’ 선보여
솔·서울시오페라단 창단 기념 공연
베르디의 ‘리골레토’·‘아이다’ 결정
성악·발레·관현악단 장르 요소 집약
원작의 감동·진정성 있는 무대 예고
◆우리말이 아리아가 되는 순간, ‘화전가’
2020년 국립극단 70주년 기념작으로 만들어져 대호평받은 연극 ‘화전가’가 25, 26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오페라로 새롭게 태어났다. 우리말, 그것도 안동 사투리가 지닌 음악성과 운율의 아름다움을 오롯이 살려낸 작품이다. 음악극 ‘적로’(2016)에서 시작해 오페라 ‘1945’(2020), 음악극 ‘마디와 매듭’(2022)으로 이어진 배삼식 작가와 최우정 작곡가의 협업이 절정에 달한 무대다. 배삼식의 서정적 문장은 최우정의 선율 위에서 노래가 되고 대사가 된다.
“사월이라, 청보리밭, 봄바람이 건너가네. 보리피리 불며 가네.”
“생이여, 달콤한 생이여, 눈처럼 하얗게 흘러내리게. 옥처럼 빛나며 여기 오시게.”
연극 무대에서도 빛났던 문장들은 오페라 무대에서 한층 더 시적인 노래로 피어난다. 최우정은 서양 오페라의 골격 위에 한국 악극 전통을 더했다. “참꽃은 뽈도그레, 산수유 영춘화/행정댁네 담장에는 보오얀 살구꽃”, “빌것도 없는 인새이/와 이래 힘드노” 같은 생생한 입말의 아리아를 만들어냈다.
막내딸 봉아의 회상으로 시작하는 1막을 지나, 신문물 ‘초꼬레뜨’와 커피, 그리고 설탕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2막부터 보는 눈과 귀가 즐겁다. 대표적 무대미술가 이태섭이 만든 아름다운 무대에선 커피접시로 부채춤을 추는 장면도 펼쳐진다. 안무가에서 출발한 정영두 연출이기에 가능한 무대다.
봉아 역의 소프라노 윤상아가 발랄한 에너지로 극을 이끌고, 극의 중심인 김씨 역의 메조소프라노 이아경은 한 차원 더 깊은 울림의 노래를 선보인다.
가장 인상적인 4막은 우리말 아리아의 향연이다. 옥중에 있는 남편을 기다리는 영주댁(김수정)의 ‘돌아와’를 비롯해 여인들 각자의 사연이 절절한 노래로 쌓이며 피날레로 향한다.
한국현대오페라로서 ‘화전가’가 보여준 가능성은 인상적이다. ‘말이 곧 음악’이 되는 순간, 한국 오페라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우리말 억양이 음악이 되고 모두가 공감하는 지나간 세월이 무대로 옮겨지면서 ‘K-오페라’가 태어났다.
◆동요로 만든 오페라 ‘바람의 노래’
일제강점기 매국노 이완용 저격사건에 가담했다가 7년간 옥고를 치르고 순국한 독립운동가 박태은. 그의 동생 박태현(1907~1993)은 음악을 공부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민족의식에 각성하고 우리 말과 글을 지키겠다는 사명으로 일생 200여곡의 동요를 작곡한다. “코끼리 아저씨는 코가 손이래”로 시작하는 ‘코끼리 아저씨’도 그의 작품이다.
그가 남긴 동요가 오페라 ‘바람의 노래’로 새롭게 태어난다. 1950년대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산골 마을 빈집에 사는 소녀 ‘강바람’과 인형 ‘달’이 바람, 동물, 자연과 함께 만들어가는 생명의 이야기다. 작곡가 김주원이 박태현의 동요와 현대적 음악어법을 결합한다. ‘강바람’역에는 2011년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성악 부문 아시아인 최초 우승자인 소프라노 홍혜란이 출연한다. ‘달’에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와 유럽 무대에서 주역으로 활동 중인 테너 최원휘가 출연한다. 성남아트리움 대극장에서 11월 14, 15일.
◆‘여자의 마음’과 ‘그리운 이름’, 오페라 ‘리골레토’
오페라 역사에서 사실주의의 문을 연 베르디의 ‘리골레토’. 궁정 광대 리골레토와 그의 딸 질다, 그리고 방탕한 만토바 공작 사이에서 벌어지는 치명적 비극을 통해 권력과 욕망, 부성과 복수의 아이러니를 날카롭게 그려낸다. 질다가 공작에게 순수한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에서 나오는 ‘그리운 이름(Caro nome)’, 그리고 공작이 술집에서 여성의 변덕을 경쾌하게 노래하는 ‘여자의 마음(La donna e mobile)’이 특히 유명하다.
솔오페라단 창단 20주년 기념작으로 공연되는 이번 ‘리골레토’에선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 바리톤 가잘레가 주역을 맡는다. 라 스칼라를 필두로 유럽 주요 극장에서 70여개의 배역을 소화한 베르디 스페셜리스트다. 질다 역에는 캐슬린 김이 출연한다. 미국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스타다. 전 세계를 무대로 기교 넘치는 콜로라투라와 맑은 음색으로 주목받아 왔다. 만토바 공작 역을 맡은 테너 박지민은 로열 코벤트가든과 BBC 프롬스 무대에서 주역으로 활약하며 국제 무대에 자리매김한 차세대 성악가.
연출은 인물의 내면을 세밀하게 그려내는 김숙영이 회전 무대와 영상 맵핑을 활용해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는 공간을 구현한다. 지휘는 이탈리아 출신의 마르첼로 모타델리가 맡는다.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10월31일∼11월2일.
◆200여명이 무대에 오르는 대작 ‘아이다’
내용이나 무대의 장대함에서 최고의 오페라로 평가받는 ‘아이다’가 2014년 이후 11년 만에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베르디 만년의 걸작으로 대규모 합창과 관현악, 발레, 무대장치 등 오페라 예술의 모든 장르적 요소가 집대성되며 ‘오페라 예술의 최정점’으로 여겨지는 작품이다.
이번 무대 역시 서울시오페라단 창단 40주년 기념작으로 서울시합창단, 위너오페라합창단과 경기필하모닉 등 총 200여명이 참여한다. 박혜진 서울시오페라단장은 “원작의 정신과 감동을 가장 진정성 있게 전하는 데 중점을 뒀다”며 “서울시오페라단이 지난 40년이 한국 오페라의 기반을 다지는 시간이었다면 이번 ‘아이다’는 그 역사를 이어 미래를 향하는 새로운 도약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11월 13∼16일.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왕설래] 가난의 대물림](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5/10/28/128/20251028518076.jpg
)
![[데스크의 눈] 설국열차와 부동산 시장](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5/10/28/128/20251028518087.jpg
)
![[오늘의 시선] 한국외교에 경종 울린 ‘캄보디아 사태’](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5/10/28/128/20251028518057.jpg
)
![[안보윤의어느날] 서툰 말 서툰 마음](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5/10/28/128/20251028517991.jpg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