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안동 올해 ‘K-미식벨트’로 선정/금소마을·맹개마을서 힐링하며 미식·전통 증류식 안동소주 즐겨/금소마을 고택 금곡재에선 안동포 시연/애절한 가락 베틀가에는 한 많은 여인 사연 담겨/선성수상길 걸으면 가을 향기 물씬/ ‘안동 더 다이닝’ 상품 이용하면 안동의 멋·맛 제대로 즐겨
“베틀놓세 베틀놓세 옥난간에 베틀놓세… 옆집이야 김선비야 뒷집이야 이선비야. 다른 선비는 다 오는데 우리 선비는 왜 안 오노. 오기사야 온다마는 칠성판에 실려 온다. 아이고 답답 내일이야….”
고택 마루에 앉은 삼베 짜는 아낙. 북질이 리듬을 타기 시작하자 애달프고 구성진 노랫가락이 바람결에 흩어진다. 이제 올까 저제 올까. 애타게 기다려도 오지 않는 님. 실 꼬느라 살 파인 무릎처럼 그리움은 갈수록 짙어지고, 아무리 끊어내도 따라오는 고달픈 삶은 삼베처럼 질기니 한숨만 나온다. 물 맑은 개울 굽이굽이 흐르는 금소마을 고택 금곡재(金谷齋)로 들어서자 안동포 삼베 옷 짓던 여인들의 한 많은 인생이 무성영화의 한 장면처럼 펼쳐진다.
◆안동포 고향 금소마을을 걷다
안동찜닭, 안동국시, 안동간고등어, 안동소주, 안동사과.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이라 그런지 안동에는 유난히 먹거리가 풍성하다. 여기에 안동하회마을, 안동하회탈춤, 안동포 등 오랜 전통문화도 살아 숨 쉬니 안동은 여행지로 풍성한 매력을 지녔다. 덕분에 안동은 지난 3월 농림축산식품부·한식진흥원이 주관하는 ‘K-미식 벨트’ 여행지로 선정됐다. 외국인 관광객 유치, 지역고용 창출, K푸드 수출 활성화를 위해 특색 있는 미식 관광 테마를 발굴하는 K미식 벨트는 지난해 시범사업으로 장(醬) 벨트가 진행됐다. 또 올해 안동시 전통주 벨트, 광주광역시 김치 벨트, 금산군 인삼 벨트가 선정됐다. 2032년까지 총 30개 벨트가 조성될 예정이다.
안동시 전통주 벨트 여행에서 만나는 마을 중 하나가 경북 안동시 임하면 금소마을이다. 골목길로 들어서자 맑은 물 졸졸졸 흐르는 개울이 여행자를 반긴다. 큰 돌을 투박하게 쌓아올리고 그 위에 깨진 기와를 올린 낮고 소박한 담장들. 그 밑에 무심하게 자라는 예쁜 백일홍. 집과 집 사이 손바닥만 한 작은 논에서 익어가는 누런 벼. 그리고 대문 앞에서 한낮의 햇볕을 쬐며 꾸벅꾸벅 졸고 있는 누렁이까지. 마치 오래전 시간이 멈춘 듯 정겨운 풍경을 보니 어린 시절 뛰어놀던 고향에 온 것처럼 마음이 포근하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골목길 느리게 타박타박 걷다 보면 고택 금곡재를 만난다. 안으로 들어서자 빛바랜 서까래가 오랜 세월 한자리를 지키며 잘 늙은 집 한 채의 역사를 전한다. 순조 10년(1810년) ‘금수서당’으로 지어졌으니 올해로 무려 215살이다. ‘금수서숙’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1928년부터는 마을 임씨 시조인 임억숙의 제사를 지내는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헌종 15년(1849년)에 새롭게 고친 기록이 대들보에 남아 있으며 19세기 서당 건물의 특징을 잘 간직한 곳으로 평가된다. 지금도 후손들은 해마다 음력 10월3일 제사를 지낸다.
넓은 대청마루에는 안동포 이수자 임능부씨와 고갑연씨가 대마 속껍질을 가늘게 쪼갠 뒤 무릎에 문지르며 삼베 실을 꼬아내는 시연을 선보이고 있다. 임능부씨는 마을에서 안동포작은박물관도 운영한다. 안동포는 6월 말 수확한 대마를 증기로 쪄서 말린 뒤 다시 물에 불려 겉껍질을 훑어내고 속껍질을 7~8월 실외에서 10일 동안 말리는 복잡한 과정(계추리·바래기)을 거쳐서 만들어진다. 이때 바람, 햇볕, 밤이슬을 맞으면서 속껍질이 부드러워지고 고운 황갈색이 나온다. 남자들은 대마를 베어 삶고, 아낙들은 이웃끼리 모여앉아 오는 잠 피해 가면서 밤늦게까지 실을 만들었다. 특히 금소마을 여인들은 자신의 신체를 도구로 삼아 길쌈 일을 했다. 날실을 잇기 위해 삼을 이빨로 뜯고 침을 바르면 입술 주변이 쓰리고 아팠다. 또 맨 무릎 위에서 삼을 비벼야 했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마찰도 견뎌야 했다. 이런 고된 노동을 달래며 부르던 노래가 베틀가다.
고씨가 베틀에 앉더니 삼베를 짜기 시작하면서 노래를 시작한다. 눈을 감고 들으니 과거보러 간 남편이 칠성판(관)에 실려 돌아온 사연과 혼자 가족의 생계를 꾸려가며 힘든 노동을 마다하지 않던 기구한 여인의 절절한 사연이 가슴속으로 뭉클하게 전해진다. 안동은 기후와 토질이 대마 재배조건에 가장 적합한 곳 중 하나로, 안동포의 품질이 매우 뛰어나 신라시대 화랑들도 즐겨 입은 것으로 전해진다. 또 조선 후기 궁중 복식의 소재로도 사용됐을 정도로 유명한 안동의 특산품이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여행자들이 금소마을에 도착하면 카페로 꾸민 마을회관에서 구수한 대마씨차와 목련차를 마시며 마을 소개를 들은 뒤 산책을 나선다. 논길과 골목길을 걸어 마을 안쪽 깊숙하게 들어서면 대마밭이 넓게 펼쳐져 있어 예쁜 사진을 얻을 수 있다. 방앗간으로 들어서자 김점희 셰프가 제대로 솜씨를 부린 ‘원조 안동찜닭’이 맛있는 냄새를 풍기며 기다린다. 간이 적당한 찜닭은 살이 아주 부드럽고 고소하다. 안동 가양주 황금주와 옥연 한 잔을 곁들이면 미식의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선성수상길 걷고 안동소주 즐기고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안동의 가을바람 즐기러 도산면 서부리 선성수상길로 나선다. 예끼마을(성선현문화단지)~호반자연휴양림을 이어주는 선성수상길은 안동호에 설치된 부유식 데크 산책길로 1.1㎞, 편도 20분 정도 거리여서 가볍게 산책하기 좋다. 안동에는 ‘퇴계 예던길’ 9개 코스가 마련돼 있는데 1코스에서 선성수상길을 만난다. 산책로 입구 전망대에 서자 푸른 안동호와 그 위를 가로지르는 데크가 어우러지는 풍경이 환상적으로 펼쳐진다. 선선하고 청정한 바람 맞으며 선성수상길을 걷는다. 한발 내디딜 때마다 미세하게 다리가 흔들려 마치 물 위를 걷는 기분이다. 데크를 걷다 보면 안동댐 조성으로 1974년 수몰된 예안국민학교를 추억하는 공간도 등장한다. 풍금, 책걸상, 옛 모습이 담긴 사진들이 지금은 사라진 시간을 얘기한다.
예끼마을과 선성현문화단지가 붙어 있어 함께 둘러보기 좋다. ‘예술의 끼가 있다’는 뜻을 담아 예끼마을로 불리는데, 골목 바닥과 집의 벽들을 모두 예쁜 그림들로 채웠다. 특히 바닥은 트릭 아트로 꾸며 재미있는 추억을 남길 수 있다. 옛 건물을 활용, 지역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도 조성돼 마을 전체가 노천 미술관이나 다름없다. 선성현문화단지에는 동헌, 객사, 내아 등 조선시대 관아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고 전통혼례, 의복, 형벌 체험도 즐길 수 있다.
코레일관광개발은 금소마을, 맹개마을 등을 포함해 1박2일 동안 안동을 둘러보는 프리미엄 K-미식 전통주 벨트 투어 상품 ‘안동 더 다이닝’을 최근 선보였다. 안동 지역 전통주 여행을 하나의 코스요리처럼 즐기는 여행으로 10월에는 24일과 31일, 11월에는 14일과 21일 출발한다. 1인 25만2000원에 왕복 열차비, 연계차량비, 관광지 입장료, 식사, 전통주 체험료 등이 모두 포함됐고 조식 푸드박스와 안동 지역 디저트로 구성된 디저트박스, K-미식 전통주 벨트의 전용 굿즈도 제공된다.
안동 더 다이닝에는 대한민국 식품명인 제6호 박재서 명인(명인안동소주), 제20호 김연박 명인(민속주 안동소주), 2024년 한국관광의 별로 선정된 맹개마을(안동진맥소주), 명인안동소주 팝업 스토어인 브랜드관 ‘잔잔’ 투어가 포함돼 있다. 명인안동소주는 가문의 500년 안동소주 역사를 잇고 있는 반남 박씨 25대손 박재서 명인이 정통성을 그대로 계승해 안동소주를 빚는 공간으로 2대 박찬관 대표, 3대 박춘우 본부장이 여행자들을 맞는다. 이곳에서는 알코올 도수 25도, 35도, 45도 안동소주를 활용한 칵테일을 만드는 체험을 할 수 있다. 안동소주의 역사가 자세히 담긴 박물관이기도 하다. 마당에 예절방, 누룩방, 소주방을 꾸며 놓았고 실내에는 안동소주역사관도 조성했다. 안동소주를 만드는 다양한 소줏고리를 시작으로 각양각색의 병 디자인, 옛 광고, 희석식 소주, 북한 술까지 소주의 역사가 빼곡하게 담겼다. 민속주 안동소주에서는 고두밥을 만드는 과정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 또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방한 때 차려진 생일상, 전통떡, 수라상, 팔도김치, 혼례음식 등 다양한 우리나라 전통음식의 세계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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