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유엔이 지향하는 바를 모두 대표하고 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한국을 칭송하며 한 말이다. 한국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일본의 패망으로 광복을 맞이한 1945년 “다시는 2차대전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말자”며 유엔이 탄생했다. 1948년 이승만 박사를 초대 대통령으로 한 신생 공화국 한국이 탄생하자 유엔은 “한반도 유일의 합법 정부”라며 이를 승인했다. 1950년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6·25 전쟁이 터졌을 때 유엔 회원국들이 보낸 군대로 구성된 유엔군사령부가 한국의 독립과 자유를 지켜냈다. 한국과 유엔의 관계는 한국인 반기문이 제8대 유엔 사무총장으로 뽑혀 2007년부터 10년간 유엔을 이끌며 한 차원 높은 성숙한 단계로 올라섰다.
24일은 1945년 10월 24일 출범한 유엔의 창설 80주년 기념일이다. 사람으로 치면 80세 생일에 해당하는 만큼 팔순(八旬) 잔치를 벌여야 할 기쁜 날이지만 요즘 유엔의 분위기는 그렇지 않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으로 시작한 전쟁이 3년 넘게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라고 유엔을 만들고 또 평화의 훼방꾼을 응징하라고 유엔 안에 안전보장이사회를 뒀건만 현실은 영 딴판이다. 안보리는 5대 상임이사국 중 하나인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기능이 사실상 마비됐다. 하긴, 무력 충돌의 예방과 종식에 누구보다 책임이 큰 안보리 상임이사국 스스로 분쟁 당사자가 됐으니 경찰관이 무장 강도로 돌변한 것과 같은 형국이다. 이런 안보리에 무엇을 기대하겠나.
제구실을 못하는 유엔 안보리로 인한 피해자가 우크라이나뿐인 것은 아니다. 한국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안보리는 앞서 여러 차례의 대북(對北) 제재 결의안 채택을 통해 북한의 핵무기 및 탄도미사일 개발을 금지했다. 여기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면서 북한과 가까운 사이인 러시아·중국도 동참했다. 북한의 핵 실험은 말할 것도 없고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역시 안보리 결의 위반으로 국제사회의 제재 대상이다. 이는 오랫동안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한국 안보를 지키는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요즘 안보리는 북한이 무슨 못된 짓을 하든 그저 수수방관만 할 뿐이다. 북한을 미국의 ‘대항마’로 여기는 러시아·중국이 안보리의 견제로부터 북한을 보호하는 ‘뒷배’ 노릇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지난 22일 평양 일대에서 북동쪽으로 미상의 비행체 두 발을 발사했다. 이튿날인 23일 조선중앙통신은 해당 발사체를 “극초음속 비행체”라고 부르며 약 400㎞를 날아가 “목표점을 강타했다”고 보도했다. 사실이라면 지금의 우리 방공망으로는 요격이 어려운 극초음속미사일 시험발사에 성공한 셈이다. 북한의 이 같은 행동은 명백한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다. 그런데도 발사 당일 국가안보실 주최로 열린 긴급 안보 상황 점검회의 후 나온 보도자료에 이 내용은 빠졌다. 한국이 연말까지 안보리 비상임이사국 임기를 수행 중이란 점을 감안하면 기가 찰 노릇이다. 안보리 이사국 진출을 대단한 외교적 성과로 여겨 떠들썩하게 홍보할 때는 언제고, 정작 안보리 이사국의 책무를 다해야 할 때는 침묵을 지킨 셈 아닌가. 안보리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고 하지만 이를 바로잡아야 할 책임도 한국을 비롯한 현 안보리 이사국들에 있다는 점을 정부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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