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롱 “전임자에 대한 인간적 예우는 당연”
에마뉘엘 마크롱(47) 프랑스 대통령이 범죄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교도소 복역을 앞둔 니콜라 사르코지(70) 전 대통령과 은밀히 만났다. 여소야대 의회의 공세로 곤경에 처한 마크롱이 아버지뻘이자 정계 대선배인 사르코지한테 조언을 구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사르코지는 영어(囹圄)의 몸이 되더라도 파리 시내 중심가에 있는 유력인(VIP) 전용 교정 시설의 독방에서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할 것으로 전해졌다.

20일(현지시간) AFP 통신에 따르면 사르코지는 지난 17일 프랑스 대통령 관저인 엘리제궁을 비밀리에 방문했다. 본인이 대통령으로 재직한 2007년 5월부터 2012년 5월까지 머문 곳이다. 불법 정치자금 모금 혐의로 최근 징역 5년 실형이 선고된 사르코지는 21일 구속돼 수감 생활을 시작한다.
현직 대통령인 마크롱이 사르코지를 초청하는 결정을 내렸다고 정부 소식통은 전했다. 이와 관련해 마크롱은 “후임 대통령으로서 전임자들 가운데 한 분을 (엘리제궁으로) 모신 것은 인간적 차원에서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사르코지는 정통 우파를 대표하는 정치인이고, 마크롱은 원래 좌파에 가까웠다가 중도로 전향한 인물이다. 2012년 프랑스 대선에서 연임에 도전하는 현직 대통령 사르코지와 좌파 사회당 후보 프랑수아 올랑드(71)가 맞붙었을 때 마크롱은 올랑드를 지지했다. 그리고 올랑드 정부에서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과 경제산업부 장관 등을 지내며 출세가도를 달렸다.

마크롱과 사르코지가 엘리제궁에서 만나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2024년 7월 총선에서 여당이 야권에 패배하며 여소야대 정국이 시작된 뒤 마크롱은 극심한 리더십 위기를 겪고 있다. 거대 야당은 사사건건 대통령과 정부의 발목을 잡으며 정년 연장, 연금 적자 축소 등 각종 개혁 정책을 좌초시키는 데 여념이 없다. 마크롱이 임명한 총리 두 명(미셸 바르니에·프랑수아 바이루)이 의회 불신임으로 연거푸 그만둔 데 이어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현 총리도 언제든지 낙마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는 사이 프랑스의 재정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국제 신용 평가사들은 이를 근거로 프랑스의 국가 신용 등급을 낮췄다. 마크롱이 선배 대통령인 사르코지에게 여소야대의 난국을 어떻게 타개할 수 있을지 조언을 요청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사르코지는 2007년 대선 당시 리비아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2011년 사망) 측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최근 1심에서 징역 5년 실형이 선고됐다. 그는 21일부터 교정 시설에서 수감 생활을 할 예정인데 프랑스는 물론 유럽연합(EU) 회원국의 전직 국가원수가 영어의 몸이 되는 첫 사례에 해당한다. 사르코지는 1심 선고 후 프랑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감옥이 두렵지 않다”며 “교도소 수감 기간 책을 쓰면서 시간을 보낼 것”이란 각오를 밝혔다.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를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한편 로이터 통신은 사르코지가 수감될 상테 교도소의 독방이 ‘VIP 숙소’로 불린다고 전했다. 우리 식으로 하면 ‘범털 집합소’라는 의미다. 파리 한복판에 자리해 누구나 쉽게 면회할 수 있는 데다가 전용 텔레비전, 유선 전화는 물론 샤워기까지 설치돼 있다는 것이다. 돈을 지불하면 외부에서 케밥과 스시 등 음식을 시켜 먹는 것도 가능하다.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