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與에 유리한 판결 일변도 우려
법조계 의견 듣고 野와도 협의해야

더불어민주당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가 어제 대법원장 포함 대법관 정원을 현행 14명에서 26명으로 늘리는 사법개혁안을 발표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사법부가 대선에 개입했던 정황이 밝혀졌다”는 말로 개혁의 필요성을 강변했다. 조희대 대법원장과 대법원을 겨냥한 ‘망신 주기’ 국정감사에서 정작 새로 드러나거나 확인된 사실은 하나도 없는데 ‘대선 개입이 밝혀졌다’니, 이 무슨 궤변이요 자가당착인가. 더욱이 대선 개입 의혹과 대법관 증원 간에 어떤 관계가 있다는 것인지 납득하기 힘들다.
사개특위 안대로 대법관이 늘어나면 이재명 대통령은 남은 임기 동안 조 대법원장 후임자를 비롯해 22명의 대법관을 임명하게 된다. 현 정권과 ‘코드’가 맞는 법조인들이 대거 대법원에 입성해 정부·여당에 유리한 판결을 내릴 것이 불 보듯 뻔하다. 명백한 사법부 압박용 조치로, 개혁 아닌 ‘개악’이라고밖에 달리 평가할 길이 없다. 더욱이 대법관 증원은 앞서 헝가리, 폴란드 같은 나라들에서 정부·여당이 사법부 장악을 위해 가장 먼저 동원한 수단 아닌가. 삼권 분립과 사법권 독립 훼손을 “민주주의 붕괴의 서막”으로 규정한 세계 정치학계 석학들의 경고가 더는 남의 일 같지 않다.
법원 재판도 헌법소원 대상에 포함하는 일명 ‘재판소원제’는 이날 사개특위 개혁안에선 빠졌다. 하지만 정 대표는 “당 지도부 의견으로 입법 발의를 할 예정”이라고 말해 재판소원제 추진 의사를 분명히 했다. 정권 마음에 안 드는 재판 결과가 헌법재판소에서 뒤집힐 가능성을 기어이 열겠다는 것으로, 이 역시 명백한 사법부 압박용 조치다. 재판소원제가 실현되는 경우 우리 사법 제도는 대법원 위에 헌재를 두는 사실상의 ‘4심제’로 변질한다. 대법원을 ‘최고 법원’으로 규정한 헌법 101조 2항과 충돌해 위헌 소지가 매우 크다.
대법관 증원의 경우 민주당은 정기국회 안에 법원조직법 개정 등 관련 절차를 마무리한다는 방침이다. 국가의 백년지대계에 해당하는 사법 제도를 이렇게 졸속으로 고쳐도 되나. 이웃 나라 일본은 인구가 1억2000만명으로 한국의 두 배가 넘는다. 하지만 우리 대법원·헌재를 합친 것에 해당하는 일본 최고재판소 판사 수는 1947년 이래 15명으로 고정돼 있다. 대법관이 늘어난다고 사법 서비스 질도 덩달아 올라간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정부·여당은 입법 과정에서 대법원·헌재 등 법조계 의견을 경청하고 야당과도 충분히 협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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