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달 말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이펙) 정상회의를 계기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회동하는 방안을 미국 정부 당국자들이 비밀리에 논의해 왔다고 미국 CNN 방송이 지난 1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 1기 때와 같은 북·미 간 직접 소통 채널이 현재는 작동하지 않아 실제 회담 개최로 이어질 가능성이 작다고는 하나 귓등으로 흘려들을 수 없는 일이다.
회동 추진 징후로 의심된다는 국내 언론 보도도 여럿이다. 한 언론은 유엔군사령부가 이달 27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인 에이펙 정상회의 기간 판문점 특별견학을 중단할 예정이라고 어제 보도했다. 통일부도 이날 “같은 기간 판문점 특별견학이 없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 방한 기간 김 위원장과의 판문점 회동을 제안할 가능성에 대비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올 만하다.
케빈 김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EAP) 부차관보를 현 조셉 윤 주한 미국대사대리 후임으로 임명할 것이라 알려진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트럼프 대통령 방한 직전에 대사대리를 교체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북·미 정상 간 만남 조율 차원이라는 분석을 낳는다. 더구나 김 부차관보는 2019년 판문점 회동을 포함해 트럼프 행정부 1기 북·미 정상회담 실무를 맡았던 이가 아닌가. 확대해석은 금물이나 김 위원장과의 관계를 큰 자산이라고 공언해 온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미 협상 재개는 언제든 꺼내 들 수 있는 카드다.
우리 정부 당국자 간 엇박자도 회동설을 부추긴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16일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에 대해 “아직 그런 움직임은 없다”고 했고, 강경화 주미한국대사도 17일(현지시간) “에이펙을 계기로 뚜렷한 조짐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반면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줄곧 에이펙을 전후해 북·미 정상회담이 판문점에서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해왔다. 2019년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만남을 제안, 48시간도 채 되지 않아 판문점에서 김 위원장과 악수했다. 돌발 회동 가능성까지 배제해선 안 될 일이다. 양자 간 직접 소통이 만남으로 이어져 황당한 ‘코리아 패싱’ 사태가 빚어져서도 곤란하다. 북한 비핵화와 한·미 간 공조는 물론이고, 이재명정부의 실용외교 역시 타격받을 수 있다. 공들인 에이펙 정상회의도 빛바랠 수 있다는 점에서 면밀히 주시하고, 대응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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