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적 이혼 소송’으로 불린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 판결이 ‘2심 파기 환송’으로 마무리되면서 이혼 확정에 이른 과정과 시간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16일 대법원의 최종 판결로 두 사람의 이혼은 확정됐다. 하지만 혼인 관계가 사실상 파탄된 시점부터 따지면 20여 년이 걸린 셈이다.
19일 재계 등에 따르면 두 사람의 혼인관계는 지난 2005년 무렵부터 파탄 상태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1998년 선대 회장 별세 이후 그룹 경영 전면에 나선 최태원 회장은 2003년 SK글로벌 사태와 2004년 소버린의 경영권 공격 등 연이은 위기 대응 과정에서 막중한 부담을 떠안았다.

위기 속에서 최 회장은 노 관장과 성격 차이로 별거에 가까운 생활을 이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최 회장은 지난 2015년 12월 세계일보를 통해 공개된 편지에서 “성격 차이 때문에 노소영 관장과 10년 넘게 깊은 골을 사이에 두고 지내왔다. 알려진 대로 오랜 시간 별거 중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당시 최 회장은 SK그룹이 사법 리스크와 경영 불확실성에 놓인 상황에서 ‘총수 개인의 사생활 문제’가 그룹 전체 위기로 번질 수 있다는 안팎의 우려 때문에 이혼 결정을 미루었다.
특히 분식회계 사건 이후 그룹 정상화와 신뢰 회복이 최우선 과제였던 만큼, 최 회장은 사회적 비난을 감수하기 어렵다는 판단 아래 ‘쇼윈도 부부’ 형태로 혼인 관계를 유지했다. 이후 이혼 논의가 오고 갔으나 2008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로 이혼소송을 제기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자녀들의 학업 등 가족적 요인도 결단을 늦추는 이유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노 관장의 진정으로 최 회장이 지난 2011년 검찰 수사를 받고 구속된 데다 2014~2015년경 노 관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최 회장의 특별사면을 반대하는 편지까지 보낸 사실이 알려지면서 양측의 관계는 완전한 결렬 수순을 밟게 됐다. 이후 부부 간 대화와 협력의 여지는 사실상 사라진 것이다.
결국 2015년 최 회장이 김희영 티앤씨재단 이사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혼외자의 존재를 공개하며 사실상 결혼 관계의 종식을 선언했다. 2017년에는 노 관장을 상대로 이혼조정을 신청하면서 20년에 걸친 파탄 관계가 법적으로 현실화됐다.
대법원은 지난 16일 상고심에서 1조3808억 원의 재산분할 부분만 파기환송 하고, 이혼 자체는 기각·확정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혼은 파기환송 대상에 포함되지 않아 16일부로 확정됐다”고 밝혔다.
20여 년간 악화일로를 걸어온 두 사람의 혼인관계가 소송으로 해소되기까지 8년이 걸린 것은, 실질적으로는 이미 파탄된 관계가 오랜 기간 법적으로만 유지돼 온 현실을 보여준다. 이처럼 현실의 혼인관계와 법적 신분 간 괴리가 장기화된 점은 사법제도의 숙제로 남는다.

최태원 회장 입장에서도 이혼 소송을 제기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지만, 소송 개시 이후에도 대법원 확정까지 8년이 걸렸다. 일반적인 이혼 소송이 대법원까지 평균 18개월 안팎에 종결되는 점을 감안하면, 평균의 다섯 배가 넘는 시간이 소요된 셈이다.
이번 선고로 개인 뿐만 아니라 노 관장 일가와 SK그룹의 법적관계도 종료됐다.
노 관장은 SK그룹 동일인 가족 범주에서 제외된다. 공정거래법상 동일인(최태원 회장) 인척 3촌 내 특수관계인으로 신고해야 했던 의무도 사라졌다. 그룹 관계자는 “불확실한 법적 관계가 정리되면서 경영 투명성과 의사결정 부담이 완화됐다”고 설명했다.
한편 최 회장은 법적으로 김희영 티앤씨재단 이사와 혼인신고를 할 수 있는 상태가 됐다. 이혼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유고가 발생할 경우 상속 문제 등 복잡한 법률 분쟁이 우려됐으나, 이번 대법원 확정으로 불필요한 논란이 일단락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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