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군의 구조가 흔들리고 있다.
인공지능(AI), 드론, 빅데이터 등의 4차 산업혁명 기술 도입을 추진하는 등 외형적 측면에선 다른 선진국 군대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하지만 첨단 기술을 사용하고 유지하며 발전시킬 군 간부 충원·유지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숙련된 전문인력이 최근 수년간 군대를 계속 떠나고 있고, 군 간부의 길을 선택하려는 인력은 줄어들고 있다.
인력 부족으로 인한 업무량 증가는 군 조직에 남은 사람들이 떠안아야 하고, 이로 인해 전역·휴직을 신청하는 사람이 생겨나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모양새다.
수십년에 걸친 사회·경제적 환경 변화를 감안, 국방정책 전반에 걸친 대수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지속되는 군 간부 유출
군대가 현대전에서 승리하려면, 전문성을 갖춘 숙련된 간부와 기술인력을 충분히 갖춰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군대는 무기전시장과 다를 바 없게 된다.

한국군은 어떨까.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유용원 의원이 국방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군 간부층의 이탈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특히 일선 부대를 지휘하고 병영 관리를 담당하는 핵심인 임관 10년차 이상 20년 미만 부사관과 장교의 희망전역과 휴직이 급증하는 모양새다.
희망전역은 2021년 960명에서 2024년 1821명으로 두 배 가까이 급증했으며, 올해도 9월까지 1327명에 달했다. 휴직은 같은 기간 2252명에서 3412명으로 늘었다. 올해도 9월까지 3401명을 기록, 지난해 수준을 뛰어넘을 전망이다.
특히 육군의 부사관 희망전역·휴직이 두드러진다.
부사관 희망전역은 2021년 252명에서 2024년 807명으로 폭증했고, 올해도 9월까지 547명에 달했다. 휴직 또한 같은 기간 1194명에서 2047명으로 늘었고, 올해도 9월까지 2209명을 기록해 지난해 수준을 뛰어넘었다.
기존 인력이 이탈하면, 어떤 형태로든 신규 인력이 충분하게 보충되어야 한다. 그래야 조직이 유지될 수 있다.

하지만 군 간부의 길을 선택하는 청년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하사는 육·해·공군과 해병대에서 임관 인원이 2021년 1만550여명에서 지난해 6750명으로 감소했고, 올해는 9월까지 4900여명에 불과했다.
육군 소위도 같은 기간 4860여명에서 3710여명으로 감소했다. 육군사관학교, 3사관학교, 학군장교(ROTC)까지 감소 추세가 드러났다.
유 의원은 “‘간부보다는 병으로 복무하는 것이 낫다’는 사회적 인식이 확산되는 현실이 반영된 결과”라고 분석했다.
육군 최정예 부대인 특전사도 노련하고 경험이 풍부한 간부의 유출이 지속되고 있다. 특히 휴직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
12·3 비상계엄 사태에 투입됐던 707 특임대는 2021년 7명에 불과했던 휴직자가 올해는 9월 기준으로 16명에 달했다. 올해 희망전역자도 10명(9월 기준)이나 된다.
1·3·7공수여단과 13특임여단에서도 같은 기간 휴직자가 2∼3배 증가했다.

특전사 요원의 휴직 급증 현상은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특전사는 평시에는 대테러작전 등에 투입되어 국가질서 유지에 기여한다.
전시에는 북한 내륙 침투 작전 등을 통해 전쟁의 향방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요원들이다.
따라서 정부는 막대한 비용을 투입해서 요원을 양성한다. 실제로 707특임단 1인당 양성비는 최대 10억 원이 넘는다.
첨단 기술이 전쟁에 큰 영향을 미치는 시대지만, 고도로 훈련받고 경험이 풍부한 특수전 요원의 중요성은 여전히 크다.
정부와 군이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입해 오랜 기간 공들여 키운 요원들이 특전사를 떠난다는 것은 안보·경제적 측면에서 큰 손실이다.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군 당국은 장병 복무여건 개선을 강조하고 있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지난 13일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군 급여체계를 중견회사 이상으로 획기적 변화를 줘야 한다”며 “병사 월급이 올라가면서 간부의 상대적 박탈감이 생겼는데, 이를 수평 하향시킬 순 없고 수평 상향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수십년 동안 제대로 대우받지 못했던 직업군인들의 복무여건을 개선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재정적 요소만으로 장교와 부사관을 직업으로 선택하려 하지 않는 MZ 세대의 심리를 되돌릴 지는 불확실하다.
한국군이 첨단과학기술군으로 개편을 추진중인 상황에선 정보통신(IT)·기계공학·인공지능(AI) 등의 분야를 공부하고, 관련 경험을 갖춘 이공계통 인재가 군 조직에는 필수다.
이같은 인재를 유치하고 교육시키고 경력을 키워줘야 군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다.
문제는 이같은 인재를 IT나 빅테크 등의 기업에서도 원한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군 간부를 모집할 때, 경찰이나 타군이 경쟁자였다. 하지만 이젠 IT와 빅테크 기업과 인재 획득·유지 전쟁을 치러야 한다.
군 조직보다 훨씬 유연하고 자유롭고 민첩하게 움직이면서 풍부한 자본력을 지닌 민간 기업과의 ‘머니 파이트’에서 군이 이길 확률은 높지 않을 것이다.
재정적 방법만으로 문제가 모두 해결될 지도 불확실하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이 2022년 3월 발간한 ‘The HRD 리뷰’에 수록된 ‘청년들이 일하고 싶지 않은 일자리’ 자료에 따르면, 청년들이 기피하는 5가지 일자리 조건은 ▲근무시간이 잘 지켜지지 않는 회사 ▲통근이 수월하지 않은 회사 ▲월급이 기대 이하인 회사 ▲정규직이 아닌 일자리 ▲주 5일 근무가 아닌 회사 순으로 나타났다.
근무시간과 출퇴근 문제가 급여보다 앞선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대목이다.
군인은 교통이 불편한 격오지에 산재한 부대를 오가는 경우가 많다. 방공포대 등은 출근하는데 1∼2시간이 걸린다.
과중한 업무와 행정·관리 소요로 인해 근무시간이 길다. 계급 정년도 있다. 청년들이 기피할 만한 조건이 적지 않다.

이같은 문제점을 모두 개선해서 청년들이 직업군인의 길을 선택하게 하려면, 한국군은 유·무형 전력에서 ‘파괴적 혁신’을 단행해야 한다.
우선 기존 현역 간부의 이탈을 최대한 저지하는데 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 숙련된 간부를 군이 오랫동안 활용할 수 있도록 조기 전역 대신 군에 남은 간부들의 직업 안정성 및 복지 증진을 최대한 빠르게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부대 단위로 산골짜기 곳곳에 흩어져 있는 병영들을 통폐합해 일정 규모 이상의 마을과 유사한 대규모 군사시설로 개편하고, 보건·복지·여가시설을 설치해 근무 여건 및 삶의 질을 높여야 한다.
조직 슬림화를 통해 불필요한 업무를 없애 근무시간을 단축하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소통 방식을 확립하면서, 개인의 성취욕구를 높일 수 있는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
조기 전역하지 않고 군에 남기를 선택한 간부들을 위해 계급정년을 재조정할 필요도 있다.
민간 기업 취업을 고려하는 청년들이 직업군인의 길을 선택하게 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12·3 비상계엄 사태의 후폭풍을 빨리 털어내고, 군인에 대한 사회적 지위·명예 회복을 서둘러야 한다.

과거엔 장교와 부사관이 사회적 명예직으로 인식됐다. 시민들이 군인을 바라보는 시각도 남달랐다. 이는 명예를 추구하는 청년들이 직업군인을 선택하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군인을 사회적 명예직으로 바라보는 인식과 지위의 확립은 자본력을 앞세운 민간 기업과의 인재 유치전에서 군에 경쟁 우위를 제공할 수 있다. 돈으로 모든 것을 살 수 없듯, 직업 선택에서 명예 등을 고려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특전부사관은 2021년부터 올해 9월까지 모집 목표를 매년 초과달성해왔다. 현역 부사관, 민간 부사관, 단기전환부사관 등 육군의 다른 부사관의 실제 선발 인원이 목표 대비 크게 미달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대한민국 최정예 특수부대원이 된다는 명예가 이같은 결과를 이끈 원인 중 하나라는 평가다.
이를 위해선 한국군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향후 50년 동안 한국군이 어떤 길을 갈 것인지를 국민에게 상세히 설명하고, 여기에 합류할 인재들은 사회적으로 인정받게 될 것이라는 점을 약속해야 한다.
군대는 국가안보를 지키는 최후 보루다. 그리고 군대를 떠받치는 마지막 기둥은 직업군인이다. 전문성을 지닌 직업군인이 흔들린다면, 군대가 흔들리는 것이고, 국가안보가 요동치는 것이다.
직업군인이 더 이상 흔들리지 않을 수 있도록 전방위적인 정책 수립이 절실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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