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치적 과시 자기최면용
정확한 北 의도 분석 바탕으로
한·미·일 단합된 대응 모색해야
지난 10일 북한이 열병식을 치렀다. 주민의 고혈을 짜내 핵무기를 만들어내는 북한에 열병식이란 국가의 존재 의미를 되새기는 중요한 행사가 된다. 특히 올해는 8차 당대회의 성과를 종합하고 조선노동당 창건 80주년까지 기념하는 행사이기에 그 어느 때보다 대규모로 성대하게 열렸다. 중국과 러시아의 2인자까지 참석하며 북·중·러 3각 연대가 재확인됐다.
열병식이니만큼 대중과 언론은 북한의 신무기에 관심을 보였다. 가장 큰 주목을 받은 것은 화성-20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었다. 이외에도 세계 최초의 단거리 극초음속 미사일로 평가되는 화성-11마, 우크라이나 전쟁 참전 경험을 바탕으로 채택한 자폭드론 2종 그리고 모듈러 방식으로 다양한 탄종을 발사할 수 있는 신형방사포 등이 눈길을 끌었다.

이러한 신무기들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북한은 이미 핵무장국가이며, 그 어떤 비핵화 시도도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자기최면이다. 화성-20은 미국에 대한 타격 능력이 완성되었다는 메시지이다. 또한 한국이 아무리 한국형미사일방어체계(KAMD) 같은 미사일 방어망을 촘촘히 구축해도, 자폭드론과 방사포의 섞어쏘기로 KAMD를 무력화하고 화성-11마로 최후의 일격을 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날을 기념하는 김정은의 연설에서 한·미에 대한 협박이 없었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다. 북한은 이미 북·중·러 권위주의 3각 연대를 완성했고, 이런 맥락에서 자신들의 핵전력이 북·중·러 연대에 도움이 된다고 중국과 러시아를 설득했다. 이는 결코 대화와 협상의 암시가 아니라 오히려 대결과 충돌을 전제로 한 것이다. 또한 비핵화를 목표로 대화를 제안하는 미국에 이를 명백히 거절하는 뜻이기도 하다.
또 하나 잊지 말아야 할 점은 북한 열병식은 김정은의 치적 과시의 장이자 북핵의 프로파간다와 선전장이라는 사실이다. 실제 위력이 어떤지와 무관하게 북한은 열병식에서 소개한 핵무기들이 이미 완성되어 실전 배치된 것이라고 인식시켜 심리적 우위를 점하고자 한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이번 열병식의 중심에 있는 화성-20이다.
북한은 2023년 화성-18을 통해 처음으로 고체연료 ICBM을 선보였다. 4월에 첫 시험발사를 실패하고 7월 2차 발사에 성공을 주장하더니 동년 12월에 훈련발사라면서 실전 배치를 선언했다. 애초에 고체연료로 ICBM을 처음 개발한 국가가 불과 8개월 만에 실전 배치를 완료했다는 것은, 전 세계 최고 수준의 개발능력을 갖췄거나 자신의 위상을 과시하기 위한 거짓이다.
그리고 북한은 2024년에는 ICBM의 최종완결판이라면서 화성-19를 선보였다. 최종완결판을 만들었다는 북한이 올해 열병식에 앞서 갑자기 화성-20을 공개한 것은 군사적 필요보다는 정치적 결정으로 봐야 한다. 권위주의 핵 3각 연대의 일원으로 중·러와 어깨를 나란히 하려면 그에 걸맞은 무기를 가져야 하는데, 실제 위력이 어떤지 여부를 떠나 화성-20이라는 더욱 새로운 무기가 필요했기 때문에 등장한 것이다.
사실 화성-20이 어떠한 능력을 가졌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 화성-18과 19도 마찬가지이다. 북한이 시험발사로 보여준 것은 고각발사를 통해 실제 사거리가 1만5000㎞나 심지어 1만8000㎞에 이를 수 있다는 가능성에 불과하다. 그러나 시험발사 시에 실제 핵무장과 동일한 탄두 중량을 모의하지 않는다면 성능이 부족해도 결과는 충분히 조작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북한의 열병식이 우리 국민에게 북한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장치로 활용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이를 위해 지난 1일 국군의 날에 우리는 북핵과 전쟁 억제를 위한 미래를 선보였어야 했지만, 임기 내 전작권 전환이나 12·3 사태에만 집착한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정부는 정확하고 차분한 분석으로 언론이 북한의 핵 프로파간다에 흔들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한 북·중·러 연대에 대응하여 긴밀한 한·미·일 연대를 만들어 단합된 대응에 나서야 할 때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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