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 문명 관찰기/ 김영란/ 박영스토리/ 3만원
#1. “특정 지역만 금지할 게 아니라 캄보디아 자체를 여행금지 국가로 지정해라.” 외교부가 한국인 감금·사망 사건이 잇따르는 캄보디아 일부 지역에 여행금지령을 내리자 관련 기사에 붙은 댓글이다. 캄보디아 측은 “피해자들 대부분은 온라인으로 불법 일자리에 지원한 사람들”이라며 “범죄와 관광은 구분해야 한다”고 황당해하는 분위기다.
#2. 미국 이민세관당국이 미 조지아주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 있던 316명의 한국인을 일주일간이나 구금한 데 대해 한국인의 59.2%는 “지나친 조치로 미국 정부에 실망했다”고 답했다고 ‘리얼미터’는 전했다. “불가피한 조치로 이해한다”는 응답률은 30.7%에 그쳤다. 보수층의 경우 53.9%가 “이해한다”고 답했다.

외국 또는 외국인을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시선은 차별적이다. 미국이나 유럽 등은 존중과 신뢰, 동경의 대상이지만 아시아, 아프리카의 경우 만만히 여기며 낮춰 대한다. 미국의 구금 행태는 ‘이해’되거나 (그러지 않을 나라로 믿었는데) ‘실망’ 수준인 반면 캄보디아 사태에 대해선 “어디서 감히”라는 식으로 공분하거나 멸시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이 같은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은 어디에서 기원할까. 빈곤과 젠더, 다문화 등 다양한 사회문제에 천착해온 김영란 숙명여대 명예교수에 따르면 한국의 인종차별은 조선 말 개항기부터다. 김옥균, 서재필, 윤치호 등 조선의 개화를 추진했던 젊은 지식인들은 서구의 인종, 민족, 문명 차별을 비판 없이 수용해 등급·서열 나누기를 내재화했다.
김 교수가 최근 펴낸 ‘이기적 문명 관찰기’는 서구라는 이기적 문명이 철저히 파괴하고 훼손한 앙코르와 잉카, 짐바브웨 등 ‘패배자들’의 문명 현장을 좇는 일종의 여행기다. 이들 문명 외 서로 다른 문명이 일정 부분 공존한 코르도바와 이스탄불, 요르단 등을 통해 서구가 정의한 문화와 세계관에 대한 묵직한 물음표를 던진다. 저자는 다인종·다문화사회로 변화하고 있는 한국 사회를 향해 상호 인정과 균형 잡힌 관계 형성이 갈등 해소와 공존의 지름길이라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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