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원 예산안 부결에 2주 넘게 지속
공화·민주 타협점 못 찾고 공방만
극한 정쟁으로 빈도 늘고 길어져
트럼프정부 1기 땐 역대 최장 35일
당시 GDP 110억弗 손실 등 타격
노동시장·소비심리 악영향 불가피
“매주 성장률 0.1%P 감소” 전망도
미 의회가 9월30일(현지시간) 회계연도 종료 전에 예산안을 통과시키지 못하면서 미국 연방정부는 지난 1일 6년 만에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됐다. 연방 하원은 정부 운영을 11월21일까지 임시 유지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지만 상원은 연일 임시예산안을 통과시키지 못하고 있다. 상원에서 임시예산안을 통과시키려면 60표가 필요한데, 현재 상원 공화당 의석은 53석이어서 민주당의 협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공화당이 ‘오바마 케어’ 보험료 보조금 만료 연장 등 조건에 동의하지 않으면 예산안 및 임시예산안을 통과시키지 않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있다. 미 의회조사국(CSR)에 따르면 역대 셧다운은 총 11차례 있었다. 1980년 첫 셧다운 이후 약 45년간 미국 역사에서 연방정부의 업무가 열흘 이상 중단된 셧다운은 총 네 차례다.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인 1995∼1996년(총 26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인 2013년(총 16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1기인 2018∼2019년(총 35일)과 이번이다.

셧다운이 15일 넘게 이어지고 있지만 해결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셧다운을 연방정부 대규모 구조조정을 할 기회로 보고, 민주당은 행정부의 실정을 심판할 기회로 보고 있어 셧다운은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들은 최근 셧다운이 길고 잦아지는 원인이 미국 사회에서 심화하고 있는 정치 양극화라고 지적한다.
◆셧다운은 왜 일어나나
1884년 제정된 예산 초과지출 금지법(1950년 개정)에 따르면 연방정부 기관은 의회의 예산 승인이나 기타 승인이 없으면 어떤 자금도 지출하거나 지출 약속을 할 수 없다. 의회가 12개 연간 세출법안 중 하나라도 통과시키지 못하면 해당 예산이 없는 연방 기관들은 의회가 조치할 때까지 비필수 기능을 모두 중단해야 한다. 만약 의회가 일부 세출법안만 통과시켰다면 예산이 없는 기관만 문을 닫게 되는데 이는 부분 셧다운이다. 과거에는 예산 승인 전에도 행정기관이 업무를 계속하는 관행이 있었지만 1980년 벤저민 시빌레티 법무장관이 법률 검토를 통해 ‘예산이 승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 기관이 업무를 계속 수행하는 것은 예산 초과지출 금지법 위반’이라고 해석하면서 본격적으로 셧다운이 제도화됐다. CSR은 첫 셧다운을 1980년 지미 카터 대통령 당시로 기록하고 있다.

셧다운이 시작되면 해당 기관 공무원들이 출근하지 말라는 통보를 받는다. 항공관제, 치안 등 ‘필수 서비스’ 제공 직원들은 근무를 계속하지만 의회가 셧다운을 끝내기 전까지는 급여를 받지 못한다. 이들은 2019년 제정된 법에 따라 셧다운이 끝난 뒤 급여를 소급해서 받을 수 있다. 사회보장연금과 메디케어 같은 혜택은 매년 새 승인 없이도 법률상 자동으로 지출되기 때문에 셧다운과 관계없이 지급된다. 각 기관은 셧다운 비상 계획을 마련한다.
1일 셧다운이 시작된 이후 미국에서 항공관제 등 필수 서비스 제공 직원들은 업무를 계속하고 있지만 일부 공항에서는 직원들의 병가가 계속돼 항공 지연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 국립공원들도 일부는 개방하고 있지만 상당 부분 운영을 중단한 상태다. 연방정부 예산으로 운영하는 박물관들은 자체 예산에 따라 일부만 운영하다 이번 주부터 다수가 문을 닫았다. 워싱턴의 스미스소니언 재단 소속 박물관들도 셧다운 직후에도 예비비로 운영을 계속했으나 13일 결국 중단했다.

◆정치 양극화 속 셧다운 잦아져
데이비드 베셀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연구소 홈페이지에 기고한 글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셧다운에 임하는 태도가 전임 행정부들과 다르다고 지적한다. 전임 행정부들이 타협을 통해 셧다운을 해결하고 정부 활동을 정상화하는 데 방점을 둔 반면 트럼프 행정부는 대통령 취임 직후 추진하던 연방정부 구조조정을 가속화할 계기로 삼고 있다. 러셀 보트 백악관 예산관리국(OMB) 국장은 15일 “우리는 매우 공격적으로 나가길 원한다”며 공무원 해고 규모를 1만명으로 언급했다. 당초 4000명 해고 방침에서 두 배 이상 늘린 것이다. 다만 미 캘리포니아 북부지방법원은 이날 정부 공무원 노조가 셧다운 중 해고가 불법이라는 취지로 제기한 ‘임시 금지 명령’ 요청을 받아들였다. 수전 일스턴 판사는 긴급 명령을 발동하고 “증거를 취합해 보았을 때 백악관 인사관리국이 정부 예산과 기능이 중단된 상황을 악용해 마치 기존의 제약이 사라진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며 “정부가 해고 조치를 잠정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에서 셧다운이 제도화한 1980년 직후 셧다운은 2∼3일 만에 끝나는 경우가 많았고, 빠르면 하루 안에도 여야가 타협안을 찾아 임시예산안 또는 예산안을 통과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연방정부의 기능 마비로 인한 경제적 타격과 이로 인한 여론 악화를 의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클린턴 행정부에서 처음으로 26일 동안의 ‘장기 셧다운’이 발생한 뒤 트럼프 1기에서는 35일간 이어지는 등 셧다운이 장기화하는 추세다. 미국 전문가들은 최근 장기 셧다운의 발생을 정치 양극화와 연관 지어 해석한다. 정치학계에서 쓰는 미 의회의 양극화 지표인 풀·로젠설 의회 이념 점수 분석에 따르면 1980년대 대비 현재의 미 의회의 양극화는 2.5배 상승했다. 하버드대 공공정책대학원인 케네디스쿨 전 학장 더글러스 엘멘도프 교수는 하버드대 교내 언론인 ‘하버드 크림슨’에 최근 셧다운 증가의 원인을 “선출직 지도자들이 타협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엘멘도프 교수는 “과거에는 셧다운의 피해가 현실화되기 전에 타협으로 해결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며 “정치적 양극화의 심화는 셧다운이 더 자주, 더 오래 지속하게 만든 주된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셧다운 장기화는 경제에 실질적 타격
과거 발생한 1∼3일짜리 단기 셧다운은 경제 전체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던 것으로 미 언론들은 전한다. 하지만 열흘이 넘는 장기 셧다운은 다르다. 마이클 페롤리 JP모건 연구원은 “셧다운이 일주일 지속될 때마다 연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0.1%포인트 감소한다”며 “공무원들이 결국 (소급해) 급여를 받긴 하지만, 이번에는 실제 해고 가능성까지 언급돼 노동시장과 소비심리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골드만삭스도 연방 공무원 휴직만으로 미국 2025년 4분기 실질 GDP 성장률이 0.15%포인트 감소할 것으로 추산했다. 미 의회예산국(CBO)은 2018∼2019년 5주간 부분 셧다운이 2018년 4분기 성장률을 0.1%, 2019년 1분기를 0.2% 낮췄다고 추정했다. 이는 미국에서 약 110억달러(약 15조6000억원)의 GDP 손실이다. CBO에 따르면 이 수치는 셧다운의 간접 효과를 포함하지 않은 최소치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이날 2주째 이어지는 연방정부 셧다운이 “미국 경제에 하루 최고 150억달러(약 21조3000억원)의 비용을 초래하기 시작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앞서 13일에도 그는 “(셧다운이) 실물경제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주택시장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업계 분석을 토대로 셧다운으로 인해 예비 주택 구매자들이 정부가 제공하는 보험 보장을 이용하는 것이 어려워져 전국적으로 하루 평균 3619건의 주택거래가 중단 위험에 처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약 15억9000만달러(약 2조2700억원)의 경제 손실로 추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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