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년퇴직하고 시골에 집을 지은 친구가 있다. 평생 혼자 살며 열심히 회사 생활을 했고, 도시보다는 시골을 선호해서 이제부터 살 집을 깊은 시골 숲속에 지었다. 추석 연휴에 친구 집에 놀러 갔는데 부러운 게 한둘이 아니었다. 첫 번째로 부러운 건 완전 탁 트인 채로 푸른 하늘과 산자락이 저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바깥 풍경이었다. 평생 착한 일을 많이 하지 않았다면 가질 수 없는, 개인이 소유해서는 안 될 것 같은 훌륭한 풍광이었다. 두 번째로 부러운 건 작고 귀여운 고양이였다. 시골 고양이라 집 안팎을 들락날락하는데 그 존재만으로도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온종일 작은 몸을 움직여 얼마나 구르고 달리는지 우리는 고양이를 쳐다보느라 혼이 나가버렸다. 그런데 그 두 가지를 제외하면 집에 살림이 많지 않았다. 어쩌면 너무 텅 비어 있다고 말할 정도로.
정보기술(IT) 쪽에서 일했던 친구는 집에 두 가지를 두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건 바로 컴퓨터와 책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책을 주문하고 싶어서 인터넷 서점 사이트를 기웃거린다나. 친구는 평생 책을 너무 많이 산 것을 후회했다. 책을 읽느라 밖으로 잘 나가지 않아 건강이 나빠진 것 같다면서. 컴퓨터도 마찬가지여서 친구는 아예 노트북을 열지 않았다. 나는 친구가 쪄준 맛있는 옥수수를 먹으며 혈당 타령을 했다. 그러자 친구는 올해는 옥수수가 많이 나지 않아 이웃들한테서 구해 냉동실에 넣어둔 거라고 말했다. 옥수수를 좋아하는 날 위해서.
아침이 되니 친구는 이미 없어졌다. 어디를 돌아다니는지 거의 열 시경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손에는 이웃들에게서 얻은 상추며 채소가 들려 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웃기다. 야, 너 이 프랑스상추 먹어봤냐? 이거 하나씩 먹을 때마다 재밌는 책장이 한 장, 또 한 장 열리는 것처럼 신기한 맛이 난다니까. 친구는 종이책은 사지 않은 것이 확실하다. 그러나 아마 뭔가 샀을 것이다. 전자책이나 오디오북 같은 거. 머지않은 시기에 다시 방문하면 빈 벽을 책이 메우고 그사이를 고양이가 오갈 것을 장담한다. 친구여 주저하지 말자. 우리에겐 읽을 책이 많단다. 네가 좋아하는 책, 그저 읽고 또 읽어라.
강영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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