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을 이용한 이들 중에는 뷔페 식당 ‘스칸디나비안 클럽’을 기억하는 이가 제법 있을 것이다. 6·25 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9월 한국에 온 스웨덴 적십자 야전병원은 1957년까지 6년 6개월간 2만5000명 이상의 환자를 진료했다. 스웨덴·노르웨이·덴마크 의료진은 한국에 머무는 동안 한데 뭉쳐 활동했다. ‘스칸디나비나 3국’ 의료진이 구내 식당으로 썼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 바로 스칸디나비안 클럽이다. 3국 의료진이 한국에서 철수하기 전 우리 측에 넘긴 인력, 시설, 장비를 토대로 1958년 국립의료원(현 국립중앙의료원)이 개원했다. 2012년 경영난을 이유로 문을 닫긴 했으나 스칸디나비안 클럽은 ‘한국 최초의 뷔페 식당’으로 통하며 1960∼1980년대 서울시민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스웨덴은 동서 냉전 시기에 철저한 중립 노선을 고수했다. 6·25 전쟁 당시 의료진을 보내 한국을 도왔지만 이후 1973년 북한과도 국교를 수립했다. 1975년에는 서방 국가로는 처음 평양에 대사관을 개설했다. 덕분에 미국 등 서방과 북한 사이에서 오랫동안 가교 노릇을 했고 지금도 그렇다. 2023년 7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주한미군 병사 트래비스 킹(당시 이등병)이 무단으로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월북했을 때가 대표적이다. 킹은 2개월 뒤 북한에서 추방돼 중국을 거쳐 미국으로 송환됐다. 당시 백악관은 “스웨덴 정부의 외교적 역할에 감사의 뜻을 표한다”고 밝혔다. 평양에 대사관을 둔 중립국 스웨덴의 막후 노력이 킹 석방에 결정적 역할을 했음을 인정한 것이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후 안보에 심각한 위협을 느낀 스웨덴은 기존의 중립 노선을 내던졌다. 그리고 미국 중심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가입했다. 나토 회원국이자 미국의 동맹국이 된 스웨덴을 전과 같이 ‘중립국’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6·25 전쟁 이후 정전협정 이행 감시를 담당한 중립국감독위원회(NNSC) 일원으로서 한반도의 평화 및 안정을 위한 스웨덴의 관여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2000년 12월 노벨평화상 수상 직후 한국 국가원수로는 처음 스웨덴을 방문한 김대중(DJ) 대통령이 스웨덴을 ‘평화 대국’이라고 부르며 “남북 관계가 잘 진전되도록 큰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고 신신당부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스웨덴 칼 구스타프 16세 국왕의 맏딸이자 차기 왕위 계승권자인 빅토리아 왕세녀가 15일 스웨덴 경제 사절단을 이끌고 한국을 방문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빅토리아 왕세녀와 만난 자리에서 2024년 스웨덴 한림원이 한강 작가를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한 점 등 한국·스웨덴 간의 인연을 강조했다. 또 6·25 전쟁 당시 스웨덴의 의료 지원을 거론하며 “앞으로도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계속 긴밀히 협력해 나가길 바란다”고 부탁했다. 꼭 25년 전 스웨덴을 찾은 DJ의 언행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방한 기간 빅토리아 왕세녀 일행은 판문점과 부산 유엔기념공원 등을 방문할 예정이다. 두 나라 간의 오랜 우정이 더욱 확고해지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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