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뱅킹 1.5조 넘겨·골드바 판매액 3배↑…실버뱅킹·실버바도 사상 최대”
“금값 또 올랐대.”
최근 투자자들 사이에서 가장 자주 오가는 말이다. 금 가격이 연일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면서 자금이 몰리고 있다.

은행 창구에는 금 계좌 개설 문의가 줄을 잇고, 실물 금을 사려는 사람들로 금거래소가 붐빈다.
◆은행 금고에 ‘金’ 몰린다…골드뱅킹 1조5000억원 첫 돌파
1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금 99.99% 1㎏ 종목의 1g당 가격은 21만9900원(14일 종가 기준)으로, ‘역대 최고가’를 기록했다.
순금 1돈(3.75g)은 약 82만원으로, 사상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가격이 오르자 개인 투자자들의 발길이 은행으로 몰리고 있다.
시중 주요은행의 골드뱅킹 잔액은 1조5130억원(9일 기준)으로 집계됐다. 사상 처음으로 1조5000억원을 넘어선 수치다.
추석 연휴 기간(10월 3~9일) 중 거래일이 짧았음에도 9월 말(1조4171억원) 대비 959억원이 늘었다.
올해 들어서만 7308억원이 순증하며, 작년 말 대비 두 배 가까이 불었다.
골드뱅킹은 실물 대신 계좌를 통해 금을 사고파는 금융 상품이다.
금 가격 상승세가 본격화된 지난 3월 처음으로 잔액 1조원을 돌파했다. 9월 들어 다시 폭증세로 돌아섰다.

◆골드바 ‘완판 행진’…“수급 불안에 판매 중단도”
은행권의 골드바 판매액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5대 은행의 10월 1~2일 이틀간 판매액은 134억8700만원, 일평균 67억원으로 지난달(51억원)을 웃돌았다.
올해 누적 판매액은 4505억원으로, 지난해 연간(1654억원)의 2.7배 수준이다.
일부 시중은행에서는 공급이 달려 잠시 판매를 중단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실물 금 투자 수요가 급증하면서 일부 유통망에서는 일시 품절 사태도 벌어졌다”며 “수급 불균형으로 가격 왜곡이 발생할 수 있다”고 전했다.
◆왜 이렇게 올랐나?…“달러 약세+금리 인하 기대+지정학 리스크”
금값 급등의 배경에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하 시사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 △각국 중앙은행의 금 매입 확대가 있다.
달러 약세 흐름도 금값을 지지하는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국제 금 가격은 지난주 현물 기준 온스당 4000달러를 넘어섰다. 국내 금값은 국제 시세보다 높은 수준이지만, 투자 열기는 식지 않고 있다.
금융업계 한 관계자는 “글로벌 지정학 리스크와 통화 불안정성이 지속되는 한 금은 여전히 매력적인 안전자산”이라며 “단기 조정은 있겠지만 장기적 우상향 흐름은 유효하다”고 말했다.
최근 금 투자 행렬에는 ‘포모(Fear of Missing Out·소외 공포)’ 심리가 작용하고 있다. 상승장에서 뒤처지기 싫은 개인투자자들이 대거 유입된 것이다.
실물 수요보다 심리적 요인, 특히 포모 현상이 강하게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단기 급등 후 조정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
전문가들은 과열 구간에서는 적립식(분할) 매입 등 ‘시간 분산 전략’을 권한다.
타이밍보다 시간 분산이 해법이라는 것이다. 적립식 매입을 통해 평균 단가를 낮출 수 있기 때문.

◆금 대신 ‘은(銀)’으로 눈 돌리는 투자자들
금값이 ‘고점 논란’에 휩싸이자 자금이 은(銀)으로 옮겨가고 있다.
주요 은행의 실버바 판매액은 지난달 42억7000만원으로 사상 첫 40억 원대에 진입했다.
올해 누적 판매액은 104억5900만원, 지난해 전체의 13배에 달한다.
금값이 정점에 가까워지면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은 투자로 수요가 분산되고 있는 모습이다.
산업용 수요도 탄탄해 중장기 성장성이 있다는 관측도 있다.
국제 은 가격 역시 온스당 50달러선을 넘어서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 중이다.
‘금-은 비율(Gold-Silver Ratio)’은 금 1온스를 사기 위해 필요한 은의 온스 수를 뜻한다.
이 비율이 낮아질수록 은의 상대적 가치가 높아진다는 의미다.
◆전문가들 “투자 유행 쫓기보다는 리스크 점검이 우선”
금·은 투자 붐이 과열 양상을 보이자 전문가들은 “유행에 휩쓸리지 말라”고 입을 모은다.
자산관리 한 전문가는 “원자재 투자도 결국 사이클을 탄다”며 “심리적 과열 국면일 수 있어 자신의 리스크 감내 수준을 먼저 점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국의 금리 인하가 본격화되고 지정학적 불안이 지속된다면 금값은 한층 더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미 단기 급등 구간에 들어선 만큼 전략적 분산 투자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금은 인플레이션 헤지 수단이자 포트폴리오 리스크를 줄여주는 자산이다.
다만 가격이 정점에 근접할수록 전체 자산의 5~10% 수준에서 관리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짙어질수록 사람들은 ‘빛나는 금속’을 찾는다.
지금의 금 열풍은 단순한 투자 유행이 아닌 달러 체제에 대한 불신과 인플레이션 시대의 자기 방어 본능이 반영된 결과다.
금이 빛나는 만큼 그 그림자도 길다. 가격이 높을수록 조정 리스크는 커지고, 투자 열기는 언제든 식을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불안 속의 냉정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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