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 탈퇴하려면 1400만원 요구
지각·조퇴 시엔 벌금까지 받아가
‘하루 12∼14시간 근무에다 귀국 시 친구를 인질로, 탈퇴 시 벌금은 1400만원.’
캄보디아에서 고문·피살된 20대 대학생처럼 해외 취업을 위해 외국 범죄조직에 몸담았던 국내 청년들의 끔찍한 일상이 어느 정도 윤곽을 드러냈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부산지법 형사3단독 심재남 부장판사는 지난달 17일 범죄단체 가입 및 활동, 사기, 범죄수익 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20~30대 한국인 A씨와 B씨, C씨에게 각각 징역 3년과 징역 2년4개월, 징역 2년8개월을 선고했다. A씨 등은 지난해 7월 3∼24일 연애를 빙자해 사기행각을 벌이는 ‘로맨스 스캠’ 방식으로 총 13명으로부터 119차례에 걸쳐 5억8600여만원을 송금받아 가로챈 혐의로 기소됐다.

판결문을 보면 이들이 몸담았던 범죄조직은 캄보디아 바벳과 라오스 비엔티안 등지에 사무실을 두고 텔레그램이나 카카오톡 등에 여성 프로필 사진을 올려놓은 뒤 골프·영화 등을 주제로 개설된 오픈채팅방에 접속하는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가상화폐나 쇼핑몰에 투자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거나 “해외여행 미션을 진행하면 함께 여행갈 수 있다”고 속여 미리 준비한 대포계좌로 투자금을 받아 챙겼다. ‘J’라는 중국인 총책 아래 관리책, 유인책, 모집책, 송금책·세탁책, 인출책·전달책 등의 조직을 갖추고 업무를 분담했다.
이 조직은 범행에 이용할 사무실을 마련해 조직원 수에 맞춘 책상과 의자, 컴퓨터, 인터넷 서버, 조직원들을 감시할 폐쇄회로(CC)TV 등을 설치하고, 조직원들이 공동으로 거주할 숙소도 마련했다. 콜센터 직원들은 자신의 컴퓨터 화면을 비추는 CCTV가 설치된 곳에서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12시간 근무하고, 지각이나 조퇴 시 벌금을 내야 했다. 또 실적이 부진할 경우 오후 11시까지 야근을 해야 했다.
사무실 출입을 위해서는 출입증 카드를 들고 셀카를 찍어 중국인 관리자에게 보내고, 그 관리자가 입구에 있는 경비원에게 인증하도록 강제했다. 사무실 건물 입구에는 현지인 경비원 5~6명이 경계를 서고, 사무실 각층에는 경비원 2~3명이 총을 들고 이들을 감시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조직원들이 근무할 때 △휴대전화 사용 금지 △다른 사람과 대화 금지 △상대방이 알지 못하도록 가명 사용 강요 △주변에 본인이 하는 일을 발설하지 말 것 △사무실 컴퓨터에 개인 계정으로 로그인 금지 등의 행동강령을 만들어 조직원들에게 적용했다. 또 매월 지급하는 급여 2000달러와 범행으로 취득한 금액 중 15~20%를 수당으로 지급하고, 지각할 경우 급여를 차감했다.
조직원들의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 조직원이 귀국을 원할 경우 친구인 조직원 한 명을 인질처럼 남게 하고, 한 명이 사무실로 들어오면 그다음 사람이 귀국하도록 한 것으로 드러났다. 조직을 탈퇴하려면 1만달러(약 1400만원)를 내기도 했다.
심 판사는 “보이스피싱 범죄는 불특정다수를 상대로 계획적·조직적으로 이루어지고, 피해자들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경제적 피해를 입히는 범죄로 사회적 폐해가 심각해 엄히 처벌할 필요가 있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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