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추석 황금연휴 동안 국내 투자자들이 미국 증시에 쏟아부은 자금이 무려 1조8000억원에 달했다.

지난해 같은 시기보다 300배 이상 급증한 규모로, 미국 기술주를 중심으로 한 ‘서학개미’의 투자 열기가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긴 연휴 동안 한국 증시가 멈춘 사이, 글로벌 시장은 인공지능(AI) 모멘텀으로 달아올랐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개인 투자자들의 자금이 일제히 미국으로 향했다.
◆추석 연휴 7일간 1조7600억원 유입…지난해보다 303배↑
12일 한국예탁결제원이 운영하는 증권정보포털 ‘세이브로’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10월 3~9일) 동안 국내 투자자의 미국 주식 순매수액은 약 12억4200만달러(한화 약 1조7600억원)로 집계됐다.
지난해 추석 연휴(2023년 9월 14~18일) 기간 순매수액 410만달러의 303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연휴가 길었던 점을 감안해도 해외 투자 열기는 단순한 ‘틈새 투자’를 넘어 하반기 투자 트렌드를 좌우할 구조적 변화로 평가된다.
◆AI 훈풍에 美 증시 ‘들썩’…연휴 공백기, 매수심리 자극
한국 증시가 휴장한 사이, 미국 증시는 AI 낙관론에 힘입어 상승세를 이어갔다.
엔비디아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가 “컴퓨팅 수요가 최근 몇 달 사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고 발언한 직후, AI 관련 종목이 일제히 상승했다.
이에 따라 엔비디아 주가가 2% 이상 급등, S&P500 지수 0.58%, 나스닥 지수 1.12% 상승하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 같은 흐름은 ‘쉬는 동안 뒤처질 수 없다’는 심리를 자극하며, 서학개미들의 추격 매수(Chasing)를 촉발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서학개미들이 가장 많이 매수한 종목은 테슬라 주가를 두 배로 추종하는 ‘디렉시온 데일리 테슬라 불 2X’ ETF로, 1억5100만달러가 몰렸다.
뒤이어 △비트코인 채굴업체 ‘아이리스 에너지’(1억500만달러) △메타플랫폼(1억달러) △테슬라(9600만달러) △비트마인 레버리지 ETF(9500만달러) 등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AI·전기차·가상자산 등 ‘미래 성장 서사’를 가진 종목군에 대한 집중도가 높았다.
◆전문가들 “AI 낙관론 속 과열 조짐…감정적 투자 주의해야”
전문가들은 이번 연휴 자금 급증 현상을 “AI 테마에 대한 단기적 기대감이 반영된 결과”라고 진단했다.
금융업계 한 관계자는 “AI 기술주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지만, 연휴 동안 투자자들이 FOMO(기회를 놓칠까 두려워하는 심리)로 매수에 나선 측면이 있다”며 “단기 과열 양상도 일부 보인다”고 전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이번 현상을 “정보 접근성과 글로벌 감각의 진화”로 해석했다.
그는 “예전처럼 외신에 의존하는 시대가 아니다”라며 “국내 투자자들이 실시간으로 글로벌 이슈를 인지하고, 선제적 대응을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다만 레버리지 상품 중심의 투자 쏠림은 위험 신호”라고 설명했다.
테슬라·비트코인 ETF에 대한 투자 비중이 높았던 점을 두고, “고수익 기대와 함께 손실 위험도 확대됐다”는 경고도 나온다.
이 관계자는 “테마형 레버리지 ETF는 수익률이 급등할 때는 매력적이지만,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조정 시 손실폭도 크다”며 “감정적 투자보다는 분산과 리밸런싱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AI 테마는 계속된다…관건은 ‘리스크 관리’”
이번 서학개미 열풍의 배경에는 ‘집단적 투자 심리’도 자리하고 있다.
연휴라는 동일한 시간대에 가족·지인 간 투자 정보가 오가고, SNS 등에서 의견이 강화되면서 ‘몰입형 매수’가 촉발됐다는 분석이다.
전통적 금융심리학에서 ‘동조 투자(herding)’의 전형적인 형태로, 단기간 시장 왜곡을 가져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현상이 단순한 해외 투자 열풍을 넘어, 국내 금융시장에 대한 신뢰와 매력도의 문제를 시사한다고 본다.
해외 투자 급증은 국내 증시의 매력도가 상대적으로 낮다는 방증이다. 장기적으로는 개인투자가 국내에 머물 수 있는 세제·상품 다양화 정책이 필요하다는 시선도 있다.
이번 추석 연휴 ‘1조8000억원’이라는 사상 최대 규모의 해외 자금 유입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다.
AI와 기술주 중심으로 재편되는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개인 투자자들의 투자 감각과 행동 패턴이 빠르게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기대감만큼 변동성도 커진 만큼, 전문가들은 “AI 시대의 투자 기회는 분명하지만, ‘과열의 파도’를 얼마나 현명하게 건너느냐가 서학개미의 다음 성적표를 좌우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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