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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까지 번진 ‘관세전쟁 불길’… 韓 경제 초비상

입력 : 2025-10-09 17:50:00 수정 : 2025-10-10 01:30:18
김희정·박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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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자동차 등 고율관세 부과 와중
EU도 철강에 50% 관세 예고 나서
韓 철강 최대 수출시장 영향 우려

EU, 철강 수입 쿼터 총량은 47% 축소
초과 물량 관세율은 25%서 2배 올려
中 저가공세·美관세 이어 삼중고 우려

여한구, EU 통상 담당 위원과 회동 예고
FTA 체결국 앞세워 시행 전 협상 총력

강훈식·위성락 참여 통상 현안 등 논의
에이펙 전 한·미 이견 좁히기 목적 분석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촉발한 관세전쟁의 불길이 전 세계로 번질 조짐이 나타나면서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초비상이 걸렸다. 미국이 자동차와 철강, 반도체, 의약품 등 주요 산업에 대해 고율 관세를 때리거나 예고해 우리 수출 기업들이 고전하는 가운데, 유럽연합(EU)마저 역내 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철강 관세 장벽을 미국 수준으로 대폭 높이기로 한 것이다. 가뜩이나 중국의 저가 공세와 미국의 고율 관세에 시달리던 국내 철강업계는 삼중고를 당하게 됐다. 보호무역주의가 국제사회의 새로운 질서로 자리 잡는 형국인 만큼 범정부 차원의 신속하고 전략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9일 산업계에 따르면 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는 유럽 철강업계 보호를 위해 지난 7일(현지시간) 기존 철강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를 대체할 새로운 저율관세할당(TRQ) 제도 도입 계획을 전격 발표했다.

철강 수출 비상 미국에 이어 유럽연합(EU)이 수입 철강 제품에 대한 무관세 쿼터(할당량)를 축소하고 품목 관세를 25%에서 50%로 올리기로 하는 등 무역장벽을 높이면서 한국의 철강 수출에 큰 타격이 우려된다. 사진은 지난 8일 경기도 평택항에 철강 제품이 쌓여 있는 모습. 평택=연합뉴스

EU가 새로 도입할 TRQ 초안에 따르면 EU의 철강 수입 쿼터 총량은 기존 세이프가드에 따라 지난해 설정한 연간 3053만t 대비 47% 줄어든 1830만t 수준으로 축소된다. 수입 쿼터 초과 물량에 부과되는 관세율은 기존 25%에서 50%로 2배가 된다.

 

EU의 이번 대책은 내년 6월 세이프가드 종료를 앞두고 회원국들이 새로운 보호체계를 요구하면서 나왔다. EU 회원국 중 11개 국가가 수입규제 강화를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고, 유럽철강협회는 TRQ 도입, 쿼터 축소, 관세율 상향 등을 요구했다.

 

◆美 이어 EU까지 수출 장벽에 철강업계 신음

 

EU는 미국과 함께 우리나라 양대 철강 최대 수출시장이다. 올해 트럼프 2기 들어 미국이 수입 철강 제품에 대해 기존의 무관세 수입 쿼터(한국은 연 263만t)를 폐지하고 품목 관세를 25%에서 50%로 인상하는 등 무역장벽을 크게 높인 상황에서 EU까지 유사 조치를 예고하면서 한국 철강업계에도 큰 타격이 예상된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EU 철강 수출액(MTI 61 기준)은 44억8000만달러(약 6조3000억원)로, 단일국가 기준 1위 수출시장인 미국(43억4700만달러)과 함께 1·2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어 일본 38억1000만달러, 중국 33억1000만달러, 인도 26억7000만달러 등이 뒤를 이었다.

미국과 달리 EU는 쿼터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쿼터 물량이 절반으로 줄어들 경우 한국 철강업계의 부담은 더욱 가중될 전망이다. 특히 이번 조치로 가장 큰 영향을 받을 품목은 열연·냉연·아연도금강판 등 EU 내 수입이 빠르게 늘어난 이른바 ‘수입압력이 높은 품목군’이다. 이들 제품은 EU의 쿼터 축소 대상 핵심 품목으로, 한국의 EU 철강 수출 중에서도 55%를 차지하고 있어 직접적인 영향권에 놓인 것으로 평가된다.

 

한국 철강업계는 이미 출혈이 적지 않다. 중국이 2023년부터 넘쳐나는 저가 철강 제품 물량을 해외 시장에 쏟아낸 데 이어 올해 미국의 ‘관세 폭탄’ 영향으로 비명을 지르고 있다. 지난 5월 전년 동월 대비 수출 물량이 12.4% 감소한 데 이어 6월 -8.2%, 7월 -3.0%, 8월 -15.4% 등 감소세가 이어지며 고전하고 있다.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연합뉴스

◆협상 여지 남아, 시행 때까지 총력전 펼쳐야

 

다만, 아직 EU와 협상 여지는 남아 있다. 한국산 철강 제품이 자동차·가전용 고급 평판재 중심으로 품질과 신뢰도가 높아 EU 내에서 단기간 대체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는 독일이 비용 상승을 우려한 자국 자동차업계 반대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도 관건이다.

 

EU가 국가별 쿼터 물량을 배분할 때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 지위를 고려하겠다고 밝힌 만큼 정부가 우리 이익을 최대한 확보할 수 있도록 EU와 적극 협상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무역협회는 “우리나라가 EU와 FTA 체결국이자 유럽 내 고급 철강 공급망의 핵심 기여국이며, 저탄소 철강기술을 선도하는 국가임을 EU 측에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U의 새 관세 조치에 대응해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은 조만간 마로시 셰프초비치 EU 통상 담당 집행위원을 만날 예정이다. 문신학 산업통상부 차관은 9일 인천항을 찾아 수출 상황을 점검하고 현대제철의 수출용 철강 적재 시설을 둘러본 뒤 “10월 중 관계부처 합동으로 철강산업 고도화 방안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관세전쟁 여파로 철강업계뿐 아니라 다른 국내 수출 기업들도 곡소리를 내고 있다. 현대자동차 등 자동차업계는 한·미 간 협상이 지지부진하면서 대미 수출 관세가 25%나 돼 일본·유럽(15%) 자동차에 갈수록 밀리고 있다. 의약품 업계도 트럼프 대통령이 수입품에 대해 ‘100% 관세’를 예고해 비상이다. 다만 복제의약품(제네릭)은 이번 조치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커 제약업계의 부담이 다소 완화될 전망이다.

한미 관세협상 후속 협의 관련 미국 방문을 마친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 6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해 이동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연휴 반납한 대통령실, 관세 대응 논의

 

대통령실은 이날 강훈식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주재하고, 김용범 정책실장,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참여하는 통상 대책회의를 개최하고 대미 통상협상 관련 대책을 논의했다. 회의에서는 김정관 산업부 장관이 지난 4일 미국 뉴욕에서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과 면담하고 협의한 내용 및 후속 협상 상황 등을 보고하고, 대통령실과 관계부처 관계자들이 향후 대응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은 추석 연휴 중인 지난 5일에도 김 실장과 위 실장 공동 주재로 긴급통상현안 대책회의를 개최했다. 김 장관이 미국에서 유선으로 참여하고,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조현 외교부 장관, 여 본부장 등이 참석했다. 추석 이튿날인 7일과 8일에도 통상 관련 실무자급 회의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달 말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이펙) 정상회의에서 2차 한·미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이 제기되는 만큼 정상회담을 앞두고 통상 분야에서 이견을 최대한 좁히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기자들과 만나 대미 통상 협상 타결 목표 시점이 있느냐는 질문에 “워낙 중대한 사안이고, 필수적인 사안이라서 회의를 계속한 것”이라며 “그것이 언제까지 목표를 두고, 언제까지 끝내겠다 혹은 극적 전환점이 있다, 이런 것이 아니라 연휴 기간에도 계속해서 관세 및 통상과 관련된 회의가 지속적으로 진행됐다 정도로 말씀드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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