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는 불안하고, 일자리는 줄었다. 월급은 제자리인데 물가는 오르고, 부동산과 금융시장은 불확실하다.
그런 현실 속에서 요즘 직장인들의 선택은 단호하다. 이직보다 버티기다.
열정은 식었지만, 일은 더 열심히 한다. 이유는 단 하나. “지금 회사를 버티는 게 그나마 낫기 때문”이다.
◆“이직보다 인정받기”…직장인들의 현실적 선택
8일 시장조사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전국 19~59세 급여소득자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5년 직장생활 및 이직 의향 조사’ 결과, 직장인들의 달라진 인식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현재 직장생활 만족도는 ‘보통 수준’(49.4%)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지만, 흥미롭게도 업무 몰입도는 오히려 2년 전보다 높아졌다.
“현재 하는 일에 열정을 갖고 임한다”는 비율은 2023년 75.2%에서 2025년 82.1%로 증가했다. “자신만의 직업적 가치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는 응답도 72.6%에서 78.9%로 상승했다.
직장인들은 단순히 ‘버티기’만 하는 것이 아닌 현재 자리에서 의미를 찾아내며 몰입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잡 호핑’에서 ‘잡 허깅’으로…이직 의향, 5년 만에 최저
눈에 띄는 변화는 이직 의향의 급감이다.
“이직할 의향이 있다”는 응답은 2023년 58.0%에서 2025년 48.1%로 떨어졌다.
직장인 2명 중 1명 이상이 이직 대신 현재 직장에 머물기로 한 셈이다. 그 이유는 뚜렷하다.
81.7%는 “잦은 이직이 커리어에 불이익이 될 수 있다”, 67.0%는 “이직보다 현재 직장에서 인정받는 게 더 가치 있다”, 82.6%는 “당분간은 현재 직장에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답했다.
‘잡 호핑(Job Hopping·잦은 이직)’에서 ‘잡 허깅(Job Hugging·현재 직장에 머무르기)’으로의 인식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경제 불안이 만든 ‘심리적 안전망’…“안정이 곧 생존”
응답자의 80.8%는 “지금처럼 불안정한 시기에는 이직보다 현재 직장에서 자리 잡는 것이 낫다”고 답했다.
이직 의향이 있더라도 실제로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이유는 경제 때문이다.
“경제적 이유로 현 직장을 유지한다” 76.8%, “업계 일자리 상황 악화로 이직을 보류한다” 63.1%였다.
직장에 대한 기대는 낮아졌지만, 현실적 수용 수준은 오히려 높아졌다.
“경제적 자유를 얻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70.2%), “원하는 일이 아니어도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고 싶다”(83.3%)는 응답이 그 증거다.
심지어 “경제적으로 안정돼도 계속 일할 것 같다”는 응답이 53.7%, “어떤 일이든 계속 일할 것 같다”는 답변은 67.6%에 달했다.
경제적 불확실성이 ‘일자리’를 넘어선 심리적 안전망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라지는 ‘조기은퇴의 꿈’…FIRE족 열풍도 식다
한때 젊은 세대의 목표였던 F.I.R.E(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 조기 은퇴 열풍은 한풀 꺾였다.
“50세 이전 은퇴를 원한다”는 응답은 2023년 61.5%에서 2025년 48.5%로 감소했다.
은퇴를 위해 필요한 자산 규모에 대해서도 응답자의 34.4%는 “10억~20억원 이상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경제적 자유는 ‘이룰 수 있는 목표’가 아닌 ‘이상적 상상’으로 밀려나고 있다.
◆전문가들 “이제 일은 ‘생존의 수단’이 됐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변화를 단순한 개인의 선택이 아닌 구조적 변화로 본다.
한 경제 전문가는 “직장인들의 이직 의향 감소는 고용 불안정성과 맞물린 결과”라며 “안정적인 수입원이 곧 생존 기반이 된 만큼, 노동시장의 유연성보다 지속 가능한 고용이 더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이어 “직원들이 떠나지 않는다고 안심할 것이 아니다. ‘떠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며 “지금 필요한 건 단순한 유지가 아닌 ‘몰입’을 이끌어낼 내부 동기 강화 전략”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직 대신 인정받기를 원하는 직원이 늘고 있다는 건 단순한 연봉보다 ‘심리적 보상’과 ‘공정한 피드백’에 대한 니즈가 커졌다는 의미”라며 “잡 허깅 현상은 단순한 충성심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는 생존적 선택이며, 조직은 ‘인재 유출’보다 ‘내부 침묵’을 더 두려워해야 한다”며 “좋은 일의 기준이 ‘적성’에서 ‘견딜 수 있는 조건’으로 바뀌고 있다. 경제 위기 시대, 일은 자기실현의 수단이 아니라 생존의 도구가 됐다”고 역설했다.
◆“이직 대신 버티기” 생존형 근로자의 시대…우리의 선택은?
‘일을 사랑해서’가 아닌 ‘살아남기 위해서’ 일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직장은 더 이상 꿈을 이루는 공간이 아니다. 불안한 사회 속 피난처가 되고 있다.
이제 기업이 마주한 과제는 ‘직원 유지’가 아니라 ‘직원 회복력(resilience)’이다.
“잡 허깅”은 충성의 표시가 아니라, 생존의 방식이다.
이 현실을 직시할 때, 비로소 한국의 직장문화는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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