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아버지 부시에 “전투기 격추된 패배자”
아들 부시 겨냥해서도 “전쟁광” 맹비난 퍼부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공화당 소속이지만 공화당을 대표하는 정치 명가(名家)인 부시 집안과는 사이가 나쁘다. ‘아버지 부시’로 불린 미국 제41대 대통령 조지 H W 부시(1989년 1월∼1993년 1월 재임)는 물론 ‘아들 부시’인 제43대 대통령 조지 W 부시(2001년 1월∼2009년 1월 재임)와도 악연으로 통한다. 그런데 트럼프가 부시 부자(父子)에게 화해의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행보에 나서 눈길을 끈다.

5일(현지시간) AP 통신에 따르면 트럼프는 이날 부인 멜로니아 여사와 함께 버지니아주(州) 노퍽 해군 기지에서 열린 미 해군 탄생 250주년 기념 행사에 참석했다. 미국이 영국 식민지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기 한 해 전인 1775년 10월 13일 창설된 미 해군은 출범 250주년을 앞두고 있다.
오늘날 미국은 ‘세계 최강의 해군 국가’라는 명성이 무색할 정도로 조선업이 쇠락한 상태다.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군함의 건조는 물론 유지·보수·정비(MRO)조차 힘들 지경이다. 트럼프가 지난 8월 이재명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에서 우리 측이 제시한 일명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에 긍정적 반응을 내보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날 노퍽 기지를 찾은 트럼프는 장병들을 대상으로 한 연설에서 마스가 프로젝트를 염두에 둔 듯 “전 세계에서 들어올 수천억 달러의 투자와 인력을 통해 조선소를 부활시킬 것”이라고 공언했다.

트럼프는 연설에 앞서 노퍽 기지를 모항(母港)으로 삼는 항공모함 ‘조지 H W 부시’에 승선했다. 그곳에서 트럼프 부부는 구축함들의 미사일 발사,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 실(SEAL)’ 요원들의 헬기 강하, F-18 전투기의 항모 이·착륙 등 해군 전력 시범 행사를 지켜봤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 이름을 딴 조지 H W 부시 항모는 아들 부시 대통령 임기 도중인 2006년 진수했다. 당시 82세의 고령이던 아버지 부시가 직접 진수식에 참석해 기념 연설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해군 조종사로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군과 싸운 참전용사인 아버지 부시는 “한때 해군 조종사였다면 누구나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는 항모를 갖고 싶은 꿈이 있다”며 참으로 감개무량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런 내막을 모를 리 없는 트럼프가 스스럼없이 항모 조지 H W 부시에 오른 것 자체가 의미심장한 행보라는 해석이 나온다.

아버지 부시는 생전에 트럼프를 공화당 대통령 후보감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래서 2016년 11월 대선 당시 트럼프 말고 민주당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부 장관에게 표를 던졌다. 아들 부시 역시 아버지의 영향 때문인지 트럼프와 냉랭한 관계를 유지했다. 2016년은 물론 2024년 11월 대선에서도 아들 부시는 트럼프 지지 선언을 하길 끝내 거부했다.
이런 부시 가문에 트럼프는 대놓고 혐오감을 드러냈다. 아버지 부시가 해군 조종사 시절 일본군 대공포에 맞아 격추됐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점을 지적하며 그를 ‘패배자’라고 깎아내렸다. 아프가니스탄 및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아들 부시를 향해선 ‘전쟁광’이란 날 선 비난을 쏟아냈다. 지난 8월 트럼프는 백악관 입구에 내걸려 있던 부시 부자의 초상화들을 ‘눈에 잘 안 띄는’ 구석으로 치우라고 명령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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