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조직 개편의 칼날을 피한 금융감독원이 이번에는 ‘공공기관 지정’ 요구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 조직 개편에서 한발 물러선 여권의 보상심리와 그동안 누적된 방만한 경영 및 공적 책임감 소홀 논란 등이 추진 동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아서다. 관건은 감독 기관으로서의 ‘독립성’이냐 공적 기관으로서의 ‘책임감’이냐라는 명분이 될 것이란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여권 “금감원 공공기관 지정 필요해”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25일 당정대(더불어민주당·정부·대통령실)는 정부조직법 개정 과정에서 금융위원회 해체 및 금융소비자보호원 신설 등 금융당국 개편안을 제외하기로 최종적으로 결정했다. 미국과의 관세협상과 내수침체 등 지금과 같은 경제 위기 국면에 금융 관련 정부조직을 6개월 이상 불안정한 상태로 방치하는 것이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판단에서다.
다만 이는 ‘공공기관 지정’ 문제와는 별개 사안이다. 기획재정부 공공기관운영위원회 결정에 따른 지정·해제는 정부조직법과 무관하게 이뤄지기 때문이다. 정부는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제 6조에 따라 매년 1월 공공기관을 확정해 발표한다. 일정상 내년 1월 전후 공운위가 금감원의 지위를 다시 논의할 수 있는 구조다.
여권 내에서는 공적 기관인 금감원의 책임성 강화를 위해 공공기관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당정은 조직개편 논쟁을 접은 이상 ‘생산적 금융’, ‘소비자보호’ 등 정책 과제를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는 기류다. 금감원 공공기관 지정은 애초에 국정기획위원회가 그린 조직 개편안엔 포함되지 않았으나, 당정 협의를 거치는 과정에서 추가됐다. 여권 관계자는 “금융감독원과 금융위원회 조직개편은 뒤로 미뤘지만 금감원에 대한 통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여전히 힘이 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금감원 노조 비대위는 개편 철회 직전과 직후 연속 집회를 열며 공공기관 지정 반대 기류를 분명히 했다. 금융 감독 업무를 수행하는 기구는 ‘독립성’이 보장돼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비대위는 “독립성과 중립성은 다툼의 여지가 없는 가치”라며 내년 1월 공운위 결정을 앞두고 ‘소비자보호 성과’로 여론을 설득하겠다고 밝혔다.

◆공공기관 지정 시 독립성, 직원 처우 등에 악영향
일각에서는 이처럼 금감원이 공공기관 지정에 반대하는 이유로 처우 악화를 꼽는다. 금감원은 ‘무자본 특수법인’이다. 국가에 의해 만들어져 정부 기관인 금융위 산하에서 금융 감독이라는 공적인 업무를 수행하지만 지위는 ‘민간 조직’인 것이다. 따라서 직원 임금, 정원, 예산 편성 등에서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아 그동안 다른 공공기관에 비해 높은 급여 수준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지정이 이뤄질 경우 경영평가·예산편성·정원·보수 등 모든 부분에서 정부 통제가 강화되고, 기관장 해임 건의 가능성까지 포함한 인사·거버넌스 영향이 확대된다.
업계 관계자는 “금감원이 독립 기관이라고는 하지만 금감원장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윤석열 정부에서 이복현 금감원장 체제에서 정부로부터 독립적으로 움직였다고 평가할 수 있냐”며 “공공기관으로 지정되면 임금이나 복지가 하향 평준화될 수 있고, 심지어 지방이전 이슈까지도 나올 수 있으니 공공기관에 지정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거다”라고 설명했다.
금감원 공공기관 지정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금감원은 2007년 기타 공공기관으로 지정됐으나, 독립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이유로 2009년 공공기관 지정이 해제됐다. 그러다 2017년 금감원 내부 채용 비리와 방만 경영 등의 문제가 불거지면서 본격적으로 공공기관 지정이 재추진됐다.
금감원은 정부가 내건 채용 비리 근절과 엄격한 경영평가, 비효율적 조직 운영 문제 해소 등을 이행하는 조건으로 공공기관 지정을 피했다. 그러나 2020년 라임자산운용과 옵티머스 사모펀드 사태로 금감원의 감독 부실, 직원 기강 해이 논란이 불거지며 공공기관 지정 여부가 또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해엔 국회예산정책처가 금감원 공공기관 지정이 필요하다는 권고를 내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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