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1위 플랫폼 사업자 네이버와 거래대금 세계 3위권의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 운영사 두나무의 결합은 전례 없는 ‘빅딜’로 평가된다. 특히 최근 글로벌 자본시장이 인공지능(AI) 및 통화 주권이라는 과제 앞에 직면한 상황에서 양사의 협력은 오픈AI 등 미국의 빅테크에 맞설 수 있는 대안으로 점쳐지고 있다.
2일 IT업계와 가상자산업계 등에 따르면 네이버는 구글이 지배한 검색 시장에서 한국 포털 주권을 사수한 경험을 갖고 있고, 두나무는 세계적인 가상자산 기술과 금융 역량을 보유했다. 양사의 만남은 ‘소버린 AI’와 ‘소버린 스테이블코인’의 구축, 글로벌 빅테크가 주도하는 헤게모니에 맞서 한국의 AI, 통화 주권을 지키고 미래 경제 질서를 선점할 터닝 포인트가 될 것이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에이전틱AI 금융거래의 핵심은 스테이블 코인
최근 AI 패권 경쟁이 격화되며 ‘소버린 AI’는 개별 기업의 과제를 넘어 국가적 과제로 부상했다. 소버린 AI는 국가와 기업이 자체적인 인프라와 데이터를 활용해 독립적으로 구축하는 AI 역량을 뜻하며, AI 주권을 지키기 위한 필수 전략으로 여겨진다.

이미 챗GPT와 제미나이 등 글로벌 빅테크 AI는 영어권 데이터에 편중돼 비영어권 국가들의 언어·문화·사회 맥락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국가별 상이한 법·윤리 기준도 고려하지 않고, 국가 간 갈등, 분쟁 또한 서구의 시각으로만 해석해 다양성을 훼손한다는 지적들도 잇따르고 있다.
이에 최수연 네이버 대표도 지난해 “소수의 AI 모델만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그 모델들이 정해주는 답에 의해 인류의 결정이 좌우되는 세상을 상상해 본다면 무섭다”고 경고했고, 하정우 전 네이버 퓨처AI센터장(현 대통령실 AI미래기획수석)도 “소버린 AI는 국뽕이 아니라, 자국 문화를 이해하는 AI”라며 빅테크 헤게모니에 대응할 한국형 AI의 필요성을 제기한 바 있다.
특히 AI는 질문에 답하는 ‘도구’나 지시를 수행하는 ‘조수’를 넘어 이제 사용자를 대신해 행동하는 에이전틱AI 단계로 진화하고 있다. 에이전틱AI는 자율적으로 목표를 설정하고 환경에 적응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적 AI다.
에이전틱AI 의 핵심은 스테이블코인이다. 에이전틱 AI가 사용자의 개입 없이 구매와 결제, 투자, 계약 체결 등 금융 거래를 수행하기 위해선 안정적이고 프로그래머블한 결제 수단이 필요하다. 결국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같은 변동성 큰 가상자산 대신 화폐와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이 자연스러운 대안이 된다.
강형구 한양대 교수는 기고를 통해 “스테이블코인은 에이전틱 AI 금융 거래의 유일한 대안”이라고 설명했고, 앨런 두 페이팔 벤처스 파트너도 “에이전틱 AI 커머스에서 기존 금융 시스템은 한계가 있다”며 “비용과 시간 절감을 위해서는 스테이블코인이 해법”이라고 강조한바 있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역습…금융시장 장악 우려
눈여겨 볼 점은 에이전틱 AI시대에 AI와 스테이블코인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이다. AI가 ‘심장’이라면 스테이블코인은 심장을 뛰게 하는 ‘피’다.
문제는 현재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무서운 속도로 디지털 금융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USDT, USDC 등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확산은 달러 패권 강화에 기여하고 우리나라를 비롯한 각국의 통화 주권을 위협한다. 이는 또한 세계 경제가 미국에 종속되는 구도를 고착시킬 수 있다. IMF도 이미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의 확대는 일부 국가의 통화 가치와 권한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성장세도 가파르다. 바이낸스에서는 2024년 2월 대비 2925년 2월까지 활성 스테이블 코인 지갑 수가 53% 증가했다. 국내 상황도 다르지 않다. 크립토퀀트 기준 올해 초부터 9월 28일까지 국내 5대 가상자산거래소(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고팍스)에서 스테이블코인 거래대금은 842억 9952만 달러로, 지난해 동기 대비 2.5배나 증가했다.
결국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종속’에 대한 우려는 커질 수밖에 없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소버린 AI’와 함께 ‘소버린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논의가 절실한 시점”이라며 “지금이야말로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경제 잠식을 막고 한국의 통화 주권을 지킬 수 있는 ‘골든 타임’”이라고 밝혔다.

◆네이버-두나무, 한국의 디지털 금융 지키는 ‘가디언’ 될까
소버린 AI에서 소버린 스테이블코인으로 이어지는 미래 담론에서 네이버와 두나무의 ‘빅딜’은 무엇보다 특별하다. 구글로 대표되는 글로벌 검색 시장에서 국내 포털 주권을 지켜낸 네이버와 바이낸스, 코인베이스 등 글로벌 대형 거래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가상자산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두나무의 만남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양사의 협력이 단순히 기업 간 제휴를 넘어 소버린 AI와 소버린 스테이블코인, 즉 ‘한국형 디지털 경제 인프라 구축을 위한 초석’이라고 입을 모은다.
IT 업계 관계자는 “AI 주권과 통화 주권을 사수하기 위한 네이버와 두나무의 의기투합”이라며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금융에서 한국만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세계 시장 질서를 주도할 필승의 패가 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검색·간편결제·구독 등 네이버가 일궈낸 전자 상거래 영토 위에 두나무의 가상 자산 기술력이 뿌리내린다면 향후 글로벌 디지털 금융 생태계를 좌우하는 거대한 숲이 될 수도 있다. 가상자산업계의 한 관계자는 “네이버와 두나무가 만들어 낼 새로운 미래, ‘Green Age’가 한국의 황금기 ‘Golden Age’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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