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년 91세… 美서 강연 투어 중 자연사
포획 아닌 야생서 장기 행동관찰 혁신
침팬지 도구 제조·사용 가능 사실 발견
“‘의도적 악행’ 인간과 침팬지 구별 요인”
인류 인간성 본질 탐구 주요 지표 역할
“놀라운 유산 남기고 떠나” 곳곳서 애도

세계적인 동물학자 제인 구달 박사가 1일(현지시간) 9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야생 침팬지 연구를 통해 동물학계 연구 방법에 혁신을 가져온 위대한 과학자이자 지구와 환경보전에 대한 메시지를 끊임없이 외쳐온 환경운동가인 구달 박사의 별세에 전 세계의 애도가 이어졌다.
미국 CNN 방송 등에 따르면 제인 구달 연구소는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을 통해 연구소의 설립자인 구달 박사가 미국 강연 투어로 캘리포니아에 머물던 중 자연적 요인으로 별세했다고 밝혔다. 연구소는 “동물학자로서 구달 박사의 발견은 과학에 혁명을 일으켰고, 그는 우리 자연계 보호와 복원을 지치지 않고 옹호했다”고 전했다.
구달 박사는 야생 침팬지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인간과 환경에 대한 깊은 통찰을 해낸 과학자로 손꼽힌다.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운 형편으로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고 비서로 일했다. 1975년 한 친구의 초대로 방문한 아프리카 케냐에서 저명한 고인류학자 루이스 리키를 만난 것을 계기로 영장류 연구에 뛰어들었다. 탄자니아 서쪽의 곰베 지역에서 야생 침팬지 연구를 시작한 구달 박사는 인간 고유의 특성으로 여겨졌던 도구 제조와 사용을 야생 침팬지가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해 1964년 네이처에 발표하면서 학계에 파장을 일으켰다. 포획 상태의 침팬지가 아닌 야생 상태의 침팬지를 장기간 체계적으로 관찰해 만든 그의 연구는 동물행동학의 방법론을 개혁한 성과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에 영국 명문 케임브리지대학은 정규 대학교육을 받지 못해 학사학위조차 없는 그에게 동물행동학 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등의 다큐멘터리 방송을 통해 ‘침팬지의 어머니’로 불리며 세계적 명성까지 얻었다.
그의 침팬지 연구는 인류가 인간성의 본질을 탐구하는 데 주요한 지표가 됐다. 구달 박사는 “침팬지에게도 인간처럼 어둡고 공격적인 면이 있다. 그들은 폭력, 잔인함, 살상, 그리고 일종의 원시적인 전쟁을 벌일 수 있다”면서 “다만, 인간에게는 ‘진정한 악’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의도적이고 계산적인 악행을 저지를 능력이 있다. 이것이 침팬지와 인간이 구별되는 점”이라고 밝혔다.
1970년대부터는 침팬지 서식지가 사라지는 문제를 해결해야만 침팬지를 보호할 수 있음을 깨닫고 환경운동에도 뛰어들었다. 구달 박사는 2019년 작가 디팩 초프라와의 인터뷰에서 “아프리카 전역에서 침팬지를 연구하는 곳마다 숲이 사라지고 있는 모습을 목격하는 것은 충격적이었다”며 “그때 나는 다음 세대가 우리보다 더 나은 관리자가 되도록 하는 것이 나의 임무임을 깨달았다”고 회상했다.
이에 구달 박사는 1977년 곰베 연구 지원과 아프리카 환경 보호를 위한 비영리 연구소를 설립한 뒤 세계 각국을 직접 찾아 현지 당국·지역사회와 만나며 자연 보전을 위한 인간의 변화를 호소했다. “희망이 있다. 우리 손에 달려 있다. 가능한 한 가벼운 생태학적 발자국을 남기라”며 지구의 회복력을 의심하지 않았던 그는 ‘희망의 이유: 자연과의 우정, 희망 그리고 깨달음의 여정’ 등 여러 환경 관련 서적을 집필했다. 1991년에는 어린이를 환경운동가로 성장시키는 프로그램 ‘뿌리와 새싹(Roots and Shoots)’을 출범했다.
1996년 첫 방문 이후 여러 차례 한국을 찾으며 우리와도 깊은 인연을 맺었다. 2012년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와 함께 ‘생명다양성재단’을 설립했고, 충남 서천군 국립생태원에는 그의 생명 사랑 정신을 기리는 ‘제인 구달 길’이 있다. 2017년 제21회 만해대상 수상자(실천 부문)로 선정됐다. 2023년에는 비무장지대(DMZ)를 찾아 ‘침팬지 소리’로 한반도에 평화가 회복되길 기원했다.
과학계의 큰 별이자 매년 300일 가까이 여행하며 환경보전의 메시지를 열정적으로 외친 구달 박사의 별세에 전 세계가 애도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엑스(X)에 “그녀는 인류와 우리 행성을 위해 놀라운 유산을 남기고 떠났다”고 썼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엑스에 “제인 구달은 우리가 세계의 자연 경이와 연결되도록 고무하는 놀라운 능력을 지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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