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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 효능감’ 저하 땐 간병 비극 3.5배 높다

입력 : 2025-10-02 17:53:00 수정 : 2025-10-02 20:57:53
김승환 기자 hw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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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대 ‘치안정책연구’ 논문

17년간 형사판결문 143건 분석
살인 50.3%가 “돌볼 자신 없어”
무력감 심화로 범행까지 이어져
‘위험신호’ 가족 심리 지원 등 필요
“간병인·정신건강 서비스 연계를”
“이제 우리 편히 여기서 끝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지난해 2월 울산의 한 아파트에서 아들 A씨는 부친 B씨와 술을 마시다가 이렇게 말했다. A씨는 B씨를 잠자리에 들게 하고는 미리 준비한 착화탄에 불을 붙여 B씨를 질식사하도록 할 생각이었다. 다행히 복도에 있는 화재경보기가 작동해 아파트 시설 담당자가 찾아왔고 창문 등을 열고 착화탄을 꺼 이들 부자의 목숨을 구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부친 B씨는 과거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마비 증상으로 거동이 불편했고 2023년부터 알츠하이머 증세를 보여 폭력성이 심해진 터였다. 아들 A씨는 경제적 상황이 어려워 부모를 제대로 모시지 못한다는 죄책감을 갖고 있었다. 지난해 9월 울산지법 형사11부(재판장 이대로)는 존속살해미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치매 발병에 따라 간병과 보호의 어려움이 가중됐다고 하더라도, 그 때문에 사람의 생명을 침해하려는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다”면서도 부친 B씨가 현재 건강을 회복했고 A씨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 점 등을 고려해 형을 정했다고 밝혔다.

 

A씨 사례처럼 간병 부담을 이유로 한 끔찍한 범행인 ‘간병 살인’엔 초고령사회의 ‘그늘’이란 평가가 늘상 따라붙는다. 최근 정부가 이재명 대통령 공약이기도 한 간병비 급여화를 내년 하반기부터 시행하는 안을 내놓은 것도 이런 비극을 줄여보고자 하는 이유에서다.

 

정부가 이처럼 간병 부담 경감을 골자로 한 대책을 추진 중인 가운데 간병하는 자녀의 ‘돌봄효능감’이 떨어지는 경우 간병살인 가능성이 3배 이상 높아진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돌봄효능감은 말 그대로 아픈 가족을 잘 돌볼 수 있다는 믿음이나 자신감을 뜻한다. 연구진은 정부가 간병 부담 지원에 더해, 돌봄효능감과 같은 간병살인 위험요인을 조기에 선별할 수 있는 체계 구축에 나서야 한다고 제언했다.

2일 경찰대학 치안정책연구소 학술지 ‘치안정책연구’(2025년 9월)에 게재된 논문 ‘간병살인의 위험요인 및 유형별 예측모형 탐색: 부부·부자 간병살인 유형을 중심으로’(김성희·김연주·윤세이)에 따르면 2007∼2024년 간병살인 형사판결문 143건을 분석한 결과 돌봄효능감이 저하된 가해자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부자 간병살인을 저지를 가능성이 약 3.53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가해자 성별, 수면부족 호소 여부, 간병기간 등을 별도로 고려했을 때 나온 값이다.

 

이런 통제 없이 분석 대상이 된 전체 간병살인 143건를 단순 분류했을 때도 돌봄효능감 저하가 확인되는 경우가 50.3%(72건)에 달했다. 돌봄효능감이 떨어지면 ‘간병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무력감이 심화할 수밖에 없고, 이 같은 인식이 피해자를 ‘고통에서 해방시켜야 한다’는 왜곡된 인식으로 이어져 범행에 이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런 이유로 간병 부담 경감뿐 아니라 정부가 돌봄효능감 저하와 같은 ‘위험 신호’를 보이는 간병 가족을 미리 선별해 심리적 지원에 나설 필요가 있다는 게 연구진의 제안이다. 연구진은 “지역 치매안심센터와 1차 보건기관인 보건소 내에 표준화된 스트레스·효능감·수면장애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도구를 도입하고 전자건강기록을 연동해 고위험 점수가 산출된 가족 간병인을 정신건강전문서비스와 연계할 필요가 있다”며 “심리적 탈진이 범행으로 비화되는 경로를 차단하는 1차 예방장치로 활용할 수 있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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