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준비 거쳐 전문 잠수사와 일대일 체험…일반인 대상 행사 처음
물속 작업에 진땀 "수중 발굴·조사, 놀라워"…추가 문의도 이어져
"준비됐나요? 제가 계속 옆에 있을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바닥에 내려가면 심호흡 크게 한번하고 시작합시다."
지난 27일 충남 태안 마도 앞바다 위 누리안호. 잠수 장비 확인을 마친 김태연 잠수사가 '동료'를 바라보며 말했다.
20년 경력의 베테랑 잠수사인 그가 물에 들어가는 건 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오늘 함께 나서는 동료는 '새내기 조사원' 조현아 씨. 김 잠수사는 조씨의 장비를 꼼꼼히 챙기면서 "잘 할 수 있다. 화이팅"이라고 말하며 용기를 북돋웠다.
두 사람은 10m 아래 바다로 천천히 내려간 뒤, 이내 작업에 나섰다.
김 잠수사의 안내에 따라 주변을 둘러보던 조씨는 과거 침몰한 것으로 보이는 배를 발견했다. 선체 안에서 겹겹이 포장된 청자 그릇과 항아리까지 찾아낸 두 사람은 조심스레 흙을 걷어낸 뒤, 유물을 확인했다.
약 40분 뒤에 물 위로 올라온 조씨는 환히 웃으며 말했다. "또 하고 싶어요!"
'바닷속 경주' 태안 마도 해역에서 펼쳐진 특별한 경험은 국립해양유산연구소의 '고려 난파선 수중발굴 캠프' 현장. 수중 발굴·조사 전문가가 아니라 일반인을 대상으로 처음으로 선보인 체험 행사다.
누리안호에서 만난 신종국 국립해양유산연구소 수중발굴과장은 "처음으로 시도하는 행사"라며 "지난해 아이디어를 냈다가 한 차례 무산된 적이 있어서 용기를 갖고 6개월 넘게 준비했다"고 말했다.
수중 고고학은 바다나 강, 호수 등 수중에 있는 유적 또는 유물을 다루는 학문이다.
옛사람의 흔적을 찾는다는 점에서 육상, 즉 땅 위의 고고학과 비슷하나 수중에서 작업하는 특성상 여러 어려움이 있다.
예컨대 공기통과 헬멧, 호흡기 등 각종 장비 무게를 더하면 35∼40㎏에 이르는 데다 물속에서는 시야를 확보하기가 어려워 고도의 전문성과 기술이 요구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1970년대 원나라 무역선 '신안선'을 발견한 이래 수중 고고학 역사가 50년에 이르고 있으나 그 성과나 의미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이에 연구소는 수중유산의 의미와 가치를 널리 알리고자 행사를 기획했다.
기존에 연구 목적으로 재현한 고려시대 배를 활용해 과거 침몰한 난파선 모습으로 꾸몄고 고려청자 2천여 점과 각종 곡물, 공예품 등을 만들어 넣었다.
그동안 발굴 조사한 유물 사례를 참고해 도자기는 서로 포개서 포장했고, 항아리에 들어갈 젓갈류 등 각종 음식은 가능한 옛 방식을 살려 재현했다.
물품의 '꼬리표' 역할을 한 목간(木簡·글씨를 쓴 나뭇조각) 글씨도 생생하게 표현했다.
박예리 연구사는 "단순한 체험이 아니라 진정성 있는 경험이 되기 위해 볏섬 150석을 함께 만들기도 했다"며 난파선 모습을 재현하기 위해 몇 차례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전했다.
박 연구사는 "마도 해역은 현재도 수중 발굴 조사가 진행 중인 만큼 유물이 섞이지 않도록 재현품 바닥에는 음각으로 '난파'라는 문구와 고유 (유물) 번호를 표기했다"고 덧붙였다.
당초 연구소 측은 참석률이 저조할까 봐 걱정했으나 결과는 전혀 달랐다.
이달 2∼11일 열흘 동안 행사에 참여하겠다고 신청한 사람은 총 801명. 하루 8명씩 나흘간 총 32명만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약 25대 1의 경쟁률이다.
첫날인 27일에 참여한 사람들은 주변 지인이나 동호회, 동아리 회원들이 함께 신청했으나 혼자만 당첨됐다고 전했다. 서울·경기 지역은 물론, 경남 창원에서 온 참가자도 있었다.
이들은 연구소 소속 잠수사 8명과 일대일로 조를 짜서 발굴 조사 체험을 진행했다.
시야가 1m 정도도 채 되지 않는 상황에서 잠수사들은 참가자들이 안전하게 체험할 수 있도록 이끌었고 유물 발굴이나 제토(흙 제거) 작업을 직접 시연하기도 했다.
누리안호에서는 신종국 과장과 박 연구사가 수중에서 촬영된 화면을 실시간으로 확인했다. 혹시 모를 돌발 상황에 대비해 응급구조사도 대기했다.
체험이 끝난 시간은 오후 5시께. 안전하게 배 위로 올라온 참가자들은 "또 하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현아 씨는 "물속에서는 펌프로 흙을 빨아들이는 제토 작업조차 쉽지 않았다"며 "이렇게 어려운 환경에서 수중 발굴·조사를 하신다는 게 정말 놀랍다"고 말했다.
다이빙 경력이 22년에 이르는 김동면 씨는 "세계 여러 곳에서 다이빙했지만, 수중 발굴 조사 체험은 처음"이라며 "쉽게 할 수 없는 경험이라 더욱 뜻깊다"고 소감을 밝혔다.
연구소는 고려 난파선을 재현한 체험장을 활용할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번에 조성한 체험 공간은 5년간 현 위치에 둘 예정이다. 올해 참여하지 못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내년에도 열어달라', '또 언제 하냐'는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고 한다.
연구소는 이번 행사가 미래의 '수중유산 지킴이'를 키우는 데도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수중유산은 대부분 어민이나 다이버의 신고로 확인돼 조사가 이뤄졌다. 연구소에 따르면 2020년대까지 들어온 수중유산 발견 신고는 누적 352건에 이른다.
이은석 국립해양유산연구소장은 "내년은 신안선 발굴을 시작으로 한국 수중고고학이 50주년을 맞는 해"라며 "그간의 연구 성과와 수중유산의 가치를 널리 알려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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