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감염병 대유행)의 여파가 잦아든 2022년 7월20일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에서 대규모 열병식이 열렸다. 팬데믹 때문에 2019년 이후 중단된 독립기념일(7월20일) 경축 퍼레이드가 3년 만에 재개된 것이다. 이날 행사에 참가한 행진 대열에 한국 육군 정복을 입은 여성 장교가 있어 눈길을 끌었다. 콜롬비아 육군사관학교(육사) 생도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는 교관 박주희 대위(당시 계급)가 주인공이었다. 어쩌다가 한국군 간부가 콜롬비아 육군의 예비 장교들에게 우리 고유의 무술인 태권도를 지도하게 된 것일까.

2010년 콜롬비아 육군 대표단이 한국을 방문했다. 우리 군의 태권도 시범을 보고 경탄한 그들은 “육사에서 태권도를 가르칠 요원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두 나라 육군이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2011년부터 한국 장교들 가운데 태권도 실력이 빼어난 인재를 뽑아 콜롬비아로 보냈다. 태권도 5단인 박 대위도 그들 중 한 명이었다. 2023년 MOU 기간이 끝나 한국군 교관은 철수했으나 콜롬비아 땅에 뿌려진 태권도의 씨앗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마지막으로 파견된 태권도 교관 이진영 소령(당시 계급·태권도 6단)은 “혈맹(血盟)인 한국과 콜롬비아의 우호 관계가 앞으로 태권도를 넘어 다양한 군사 교류·협력 프로그램으로 더욱 굳건해질 것”이란 바람을 전했다.
한국과 콜롬비아가 혈맹이란 말에 “왜” 하며 궁금해할 이도 있을 것이다. 6·25 전쟁 당시 콜롬비아는 연인원 5000명이 넘는 병력을 보내 한국을 도왔다. 그중 213명이 머나먼 이국 땅에서 잘 알지도 못하는 나라와 그 국민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 콜롬비아는 중남미 유일의 공식 참전국이고, 6·25 전쟁은 20세기 콜롬비아군이 외국 영토에서 싸운 유일한 사례다. 콜롬비아 육사 생도들을 위한 태권도 교육은 빙산의 일각일 뿐 우리는 콜롬비아에게 갚아야 할 ‘빚’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고 하겠다.

올해 6·25 전쟁 발발 75주년을 맞아 콜롬비아 참전용사의 유품이 우리 전쟁기념관에 기증돼 눈길을 끈다. 호세 카스티요 셀리스(2019년 작고)가 소장한 군복·훈장과 사진 등 300여점인데, 70여년 전 한국에서 콜롬비아군이 어떻게 싸웠는지 보여주는 귀중한 사료라고 하겠다. “역사 속 희생을 잊지 말아야 한다”며 기증을 결심한 유족이 그저 고마울 뿐이다. 지난 16일(현지시간) 열린 유물 기증식에서 주(駐)콜롬비아 대사관 이충건 공사는 “대한민국을 위해 싸운 젊은 병사의 용기와 희생이 담긴 상징물 기증을 통해 양국의 우정과 역사적 연대가 더욱 깊고 굳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유족의 바람처럼 콜롬비아 청년들이 이 땅에서 흘린 땀과 피가 영원히 기억되길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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