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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혁명을!”… 포드 대통령 암살 미수 女 95세로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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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9-26 20:18:27 수정 : 2025-09-26 20:18:26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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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9월22일 대통령 향해 권총 방아쇠 당겨
빗나간 뒤 두 번째 발사 시도 중 군중에 제압돼
종신형 확정… 32년 복역 후 가석방으로 풀려나

미국 38대 대통령 제럴드 포드(1974년 8월∼1977년 1월 재임)를 암살하려다 미수에 그친 새러 제인 무어(여)가 95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그는 체포 후 혐의를 시인하고 종신형 선고를 받았으나 실제로는 32년간 복역 후 가석방됐다.

 

1975년 9월 당시 제럴드 포드 미국 대통령 암살을 시도했다가 미수에 그친 새러 제인 무어(1930∼2025). 네 자녀의 어머니였던 그는 종신형이 확정돼 32년간 복역한 뒤 2007년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게티이미지

25일(현지시간) BBC 방송에 따르면 무어는 전날(24일) 미 남동부 테네시주(州) 프랭클린의 한 요양 시설에서 숨을 거뒀다. 구체적 사인은 공개되지 않았다. 그는 결혼과 이혼을 여러 차례 반복하며 4명의 아이를 낳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미 언론은 유족의 인적 사항 보도를 생략했다.

 

1970년대 전반 미국 사회는 베트남 전쟁에서 미군이 저지른 전쟁 범죄 의혹과 징병제에 대한 반발, 리처드 닉슨 대통령(1969년 1월~1974년 8월)이 연루된 워터게이트 사건 등으로 극도의 혼란을 겪었다. 특히 닉슨이 1972년 대선을 앞두고 재선을 위해 불법 정치 공작을 저질렀다는 내용의 워터게이트 사건은 보수와 진보 진영 간 대립에 불을 질렀다. 의회의 탄핵소추 위기에 내몰린 닉슨이 스스로 물러나고 부통령이던 포드가 대통령직을 승계했으나 대중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포드가 미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인기 없는 지도자로 전락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무어는 197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급진적 변혁 사상에 심취했다. ‘지금의 미국 사회는 완전히 잘못되었으며, 이를 바로잡으려면 폭력을 수반한 혁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무어는 포드가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시코를 방문하는 1975년 9월22일을 ‘거사일’로 잡았다. 대통령을 환영하는 군중 속에 섞여 있던 그는 포드를 향해 미리 준비한 38구경 리볼버 권총을 쐈다. 첫 발이 빗나간 것을 깨달은 무어가 다시 조준하려는 순간 근처에 있던 예비역 해병대원이 달려들어 그의 손을 붙들었다. 이후 무어의 신병은 우리 대통령 경호처에 해당하는 백악관 비밀경호국(SS) 요원들에게 인계됐다.

 

제럴드 포드 전 미국 대통령(1974∼1977년 재임). 리처드 닉슨 행정부의 부통령으로 있다가 닉슨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하야한 뒤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3년도 안 되는 짧은 임기 동안 두 차례 암살 위기를 겪었는데 공교롭게도 범인이 모두 여성이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포드를 겨냥한 암살 시도는 불과 17일 전인 1975년 9월5일에 이어 두 번쨰로 발생한 것이어서 미국 사회에 충격을 안겼다. 첫번째 범행을 저지른 이는 리넷 프롬(76)이란 이름의 여성인데, 종신형 확정 후 2009년 가석방으로 풀려나 현재는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미국 역사상 대통령 암살을 시도한 범죄자 가운데 여성은 프롬과 무어 두 명뿐이다.

 

무어는 수사 과정에서 “베트남 전쟁 등을 겪으며 우리나라(미국)는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변화를 위한 유일한 방법은 폭력적 혁명이고, 나는 대통령을 살해하면 혁명 촉발이 가능하다고 믿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종신형 확정 후 32년간 복역한 뒤 2007년 12월 77세의 나이에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2006년 12월 포드가 93세를 일기로 별세하고 꼭 1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무어는 가석방 후 언론 인터뷰에서 “대통령 암살 시도를 후회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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