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서 같은 타이거즈지만, DNA가 다르다고 하는걸까. 프로야구 KIA는 전신인 해태 시절, KBO리그 최초의 왕조를 세웠다. 프로야구 출범 2년차인 1983년에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한 해태는 ‘국보’ 선동열 전 감독을 앞세워 1986년부터 1989년까지 한국시리즈 4연패를 달성했다. 보통 프로스포츠에서 챔피언결정전 3연패를 달성하면 왕조라고 부른다는 것을 감안하면 프로야구 최초의 왕조인 셈이다.
‘왕조’의 기준을 한국시리즈 3연패 이상으로 엄격하게 세우면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시리즈 우승 4회를 달성한 ‘현대 왕조’(1998, 2000, 2003~2004)나 2000년 후반의 ‘SK 왕조’(2007~2008, 2010), 2010년대 후반의 ‘두산 왕조’(2015~2016, 2019)는 왕조라 부를 수 없다. 오로지 1986~1989의 해태와 2011~2014년까지 한국시리즈 4연패를 넘어 통합우승 4연패를 달성한 삼성만이 왕조라 부를 자격이 있다.
2001시즌 도중 해태 대신 KIA로 모기업이 바뀐 이후 타이거즈의 행보는 롤러코스터를 탔다. 해태가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지 않아도 매년 강팀의 면모를 유지한 반면 KIA는 기복이 심했다. KIA로 팀명을 바꾼 이후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건 2009년, 2017년, 그리고 2024년까지 단 세 번에 불과하다. 다행히 해태 시절부터 이어온 한국시리즈 불패신화는 이어왔지만, 이를 반대로 생각하면 세 시즌을 제외하면 한국시리즈에도 오르지 못할 정도로 성적이 신통치 않았다는 얘기가 된다.
게다가 2009년 한국시리즈 우승 이후 이듬해엔 5위로 추락했고, 2017년 우승 이후에도 5위에 머물며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탈락했다. 최초 왕조를 개창했던 해태와는 달리 연속 우승을 꿈도 꾸지 못한 셈이다.
다만 2024시즌 통합우승을 달성한 이후 2025시즌을 앞두고는 ‘절대 1강’으로 평가받았다. 팬들은 물론 전·현직 단장, 해설위원 등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KIA를 '절대 1강'으로 예상했다.
어찌보면 당연한 예상이었다. 2024시즌 통합 우승 전력을 거의 그대로 유지했다. 핵심 불펜으로 활약한 장현식이 FA 자격을 얻어 LG로 이적하긴 했지만, 현금 10억에 2026 신인 드래프트 1,4라운드 지명권까지 얹어 구원왕 출신 조상우를 영입했다. 여기에 토미존 서저리를 받은 좌완 신예 불펜 이의리의 복귀도 앞두고 있었다. 팀 타선에 장타력을 더해주기 위해 외국인 타자도 소크라테스 브리토 대신 패트릭 위즈덤으로 바꾼 것도 플러스 요인으로 평가됐다.
그러나 해태가 아닌 KIA 타이거즈의 종특이 또 한 번 발휘됐다. 시즌 초반부터 독주할 것이란 예상과는 달리 주축 선수들의 부상으로 인해 중하위권에 맴돌았다. 당장 지난 시즌 정규리그 MVP를 수상하며 슈퍼스타 반열에 오른 4년차 3루수 김도영이 3월22일 개막전에서 왼쪽 햄스트링 부상으로 나가떨어졌다. 내야수 박찬호, 김선빈이 줄줄이 부상 이탈했고, 4월엔 핵심 불펜 곽도규가 왼쪽 팔꿈치 인대 손상으로 조기에 시즌을 접었다. 주전 외야수 나성범은 오른쪽 종아리 근육 부상으로 전력에서 빠졌고, 5월엔 선발 자원 황동하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김도영은 한 달을 쉬고 돌아왔지만, 이후에도 두 번이나 햄스트링 부상을 더 당한 뒤 결국 시즌아웃이 됐다. 팀 타선의 청사진 자체가 어그러졌다.
그럼에도 ‘함평 타이거즈’라 불리는 퓨처스리그 선수들의 맹활약을 앞세워 KIA는 전반기까지는 버텨냈다. 5월 15일부터 7월 5일까지 44경기에서 27승 3무 14패, 승률 0.659의 성적을 거두며 팀 순위를 2위로 끌어올리기도 했다. 이 기간 오선우, 김호령, 한준수, 윤도현 등 백업 선수들이 부상 선수들의 빈자리를 완벽하게 메우면서 힘을 냈다. 그러나 KIA는 부상 선수들이 복귀한 뒤 오히려 부진한 성적을 거뒀다.
그러나 한 여름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전반기 막판과 후반기 초반인 7월 6일부터 30일까지 13경기에서 1승 1무 11패로 최악의 성적을 거두며 2위에서 7위로 수직 낙하했다. 외국인 투수 애덤 올러는 팔꿈치 염증으로 엔트리에서 빠졌다가 복귀했으나 예전의 기량을 펼치지 못했다.
마무리 정해영을 비롯한 불펜진의 불안이 결정타였다. 마무리 정해영은 7~8월 평균자책점이 5.54에 달할 정도로 뒷문 자체가 흔들렸다. 2년차 우완 불펜 성영탁이 새로운 필승조로 가세했지만, 장현식을 대체할 것으로 예상됐던 프라이머리 셋업맨 조상우를 비롯해 최지민 등 기존 필승조들이 전체가 흔들렸다. 타선이 이길 점수를 뽑아줘도 불펜이 승리를 상대에게 가져다 바쳤다는 얘기다.
우승 후보라는 평가가 무색해진 KIA 선수단은 초조해졌다. 가을야구 탈락 가능성이 커지자 선수들은 부담을 이겨내지 못하고 자멸하기 시작했다. 승부처마다 부진했다. KIA의 8월 득점권 타율은 0.231에 그쳤고, 역전패는 전체 1위(9차례)를 기록했다.
냉정을 유지해야 할 벤치도 흔들렸다. 지난 시즌을 앞두고 낙마한 김종국 전 감독 대신 현장 수장 자리를 급하게 맡았으나 특유의 ‘형님 리더십’을 앞세워 통합우승을 이끌었던 이범호 감독은 평정심을 잃는 모습이 자주 나왔다. 경기가 어려워지면 사령탑부터 표정이 일그러지는 모습이 자주 나왔다.
게다가 성적이 점점 더 추락하며 가을야구 진출 가능성이 점점 사라지자 경기 중 카메라가 비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수를 꾸짖는 모습이 자주 나왔다. 이달 17일 한화전에선 베테랑 김선빈이 연속 실책을 범하자 질책성 교체를 했고, 18일 한화전에선 상대 팀 노시환에게 홈런을 허용한 포수 한준수를 불러 더그아웃에서 질타했다. 이 감독에게 꾸중을 들은 한준수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벤치와 선수단, 모두가 흔들린 KIA는 가을야구 가능성이 점점 사라졌고, 24일까지 ‘트래직 넘버’를 1을 남겨뒀다. 그리고 KIA의 경기가 없었던 25일, 5위인 KT가 SSG를 10-1로 대파하면서 KIA의 트래직 넘버 1은 사라졌다. 가을야구 진출 가능성이 0%가 됐다.
예상치를 한참이나 벗어난 몰락으로 인해 KIA에 대한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는 광주 팬심도 등을 돌렸다. 올해 KIA는 25일 현재 홈 관중 102만8천764명, 한 경기 평균 관중 1만5천587명을 기록했다. 지난 시즌 125만9천249명, 1만7천250명에 비해 큰 폭으로 떨어졌다. 지난해보다 홈 관중 수가 떨어진 건 10개 구단 중 유일하다.
악몽은 끝나지 않았다. 8위 KIA는 이대로 시즌을 마감하면 ‘우승팀의 추락 역사’에 한 줄을 보태게 된다. 역대 KBO리그에서 전년도 한국시리즈(KS) 우승팀이 8위 이하의 성적을 낸 경우는 단 한 번뿐이었다. 1995년 KS 우승 트로피를 든 OB(현 두산)가 1996년 최하위인 8위를 기록한 것이 유일하다. 만약 올해 KIA가 8위 이하의 성적을 내면 KBO리그 통산 두 번째 불명예 기록을 쓴다.
KIA는 이제 올 시즌 드라마틱하게 추락한 이유에 대해 분석해야 하는 시간이 됐다. 추락의 표면적인 이유는 주축들의 줄부상이다. 다만 부상 문제는 단순히 불운한 외부 요인으로 받아들일 수만은 없다. 부상자를 철저하게 관리했는지, 재활 매뉴얼이 제대로 작동했는지, 구단 내부의 성찰이 필요하다. KIA는 지난 시즌 통합 우승을 차지한 뒤 우승 샴페인에 취해 새 시즌 대비를 철저히 하지 못했다. 한국시리즈 일정으로 주전급 선수들은 마무리 캠프를 하지 못했고, 시즌 종료 후엔 훈련보다 외부 행사 참가에 공을 들였다. 선수들은 완벽하게 몸 상태를 끌어올리지 못한 상태에서 스프링캠프에 들어갔다. 모그룹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선수단 전원이 ‘비즈니스석’을 타고 미국 캘리포니아로 떠날 때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선수단은 미국 1차 스프링캠프와 일본 2차 캠프에서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만들지 못했다. 선수단 전반의 컨디션 난조 연쇄 작용으로 시즌 초반부터 부상 선수들이 속출했고, 이는 시즌 성적과 직결됐다는 것이 중론이다. 부상 관리는 짚고 넘어가야 한다. 올 시즌 2연패를 달성해야 한다는 부담 때문인지 완전하게 회복하지 않은 선수를 조급하게 1군에 올렸다가 낭패를 봤다.
큰 실패를 맛본 KIA는 일찌감치 강도 높은 훈련을 예고했다. 이범호 감독은 최근 2025시즌 실패를 인정하면서 “마무리 캠프부터 많은 훈련량을 소화할 것”이라며 “젊은 선수들뿐만 아니라 중고참 선수들도 강도 높은 훈련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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