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석유·가스 수입하지 않는 것이 최선”
미국과 튀르키예는 나란히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으로 동맹이지만 서로 껄끄러운 사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신 못지않은 ‘스트롱맨’(철권통치자)으로 꼽히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에게 “튀르키예가 러시아산 석유·가스 수입을 멈추면 미국산 F-35 스텔스 전투기를 얻게 될 것”이라고 통큰 제안을 했다.

25일(현지시간) BBC 방송에 따르면 트럼프와 에르도안은 이날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했다. 뉴욕에서 진행 중인 유엔 총회에 참석해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전쟁을 맹비난하는 연설을 한 에르도안이 이후 트럼프의 초청으로 워싱턴을 방문한 데 따른 것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 두 대통령의 양자 회동은 지난 6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를 계기로 이뤄진 것을 포함해 이번이 두 번째다.
튀르키예는 2022년 2월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중립에 가까운 태도를 지키는 중이다. 서방의 대(對)러시아 경제 제재에 불참하는 대신 러시아로부터 비교적 값싼 석유와 가스를 대량으로 수입하고 있다. 반면 우크라이나의 곡물이 전란을 피해 외국으로 무사히 수출될 수 있도록 도우면서 두 나라 간 전쟁 종식을 위한 중재에도 앞장서왔다.
이날 트럼프는 “에르도안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양자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다”며 “이는 전쟁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뜻”이란 말로 에르도안을 치켜세웠다. 이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겨냥한 군사 행동을 계속하는 동안 튀르키예가 러시아로부터 석유와 가스를 구입하는 것을 중단하기 바란다”며 “에르도안 대통령이 그렇게 한다면 최선의 방법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실 에르도안에게는 상당한 부담을 지우는 일이다. 그간 나름대로 공들여 관리해 온 푸틴과의 관계에 금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잘 아는 트럼프도 ‘당근’을 제시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튀르키예가 간절히 원하는 F-35 스텔스 전투기 수출이다.

튀르키예는 공군력 강화를 위해 F-35 개발 단계부터 그 도입에 눈독을 들였다. 하지만 미국은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인 2019년 F-35의 튀르키예 판매 불허 결정을 내렸다. 튀르키예가 러시아로부터 S-400 지대공 미사일 시스템을 구입해 사용 중인 만큼 “미국의 첨단 군사 기술이 러시아로 새어 나갈 우려가 크다”는 이유를 들었다.
미국이 완고한 태도를 고수하며 튀르키예는 F-35 대신 1980년대에 만들어진 구형 전투기 F-16의 개량형인 F-16S를 들여와 공군력을 보강하는 방법 외엔 없었다. 에르도안은 지난 6월 헤이그에서 트럼프를 만난 뒤 자국 취재진에게 “우리는 F-35를 포기하지 않았다”며 트럼프 2기 행정부와 F-35 수입에 관한 논의를 재개했음을 내비쳤다.
이날 트럼프는 에르도안에게 “튀르키예는 구매하고 싶은 물건을 사는 데 성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F-35의 튀르키예 판매에 대한 미 행정부의 승인이 목전에 다다랐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다만 트럼프는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어떤 것(F-35)이 필요하듯 우리(미국)에게도 어떤 것(러시아산 석유·가스 수입 중단)이 필요하다”라는 말로 튀르키예가 먼저 대러시아 금수(禁輸) 조치의 이행이라는 조건을 수용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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