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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대통령 ‘END’, DJ정부 햇볕정책 못 벗어나 현실성 부족”

입력 : 2025-09-25 22:46:56 수정 : 2025-09-25 22:52:39
김병관 기자 gwan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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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한반도 평화체제 구상’ 제언

남북 교류 확대·관계 정상화·비핵화
DJ·盧정부의 평화번영정책서 제시
1988년 노태우 ‘7·7 선언’도 내용 비슷
“END는 전형적인 햇볕 정책·관여 정책”

北, 中·러 뒷배 삼아 신냉전 구도에 편승
‘안러경중’ 추진·핵무력 고도화에 집중
“변화된 정세 맞춰 새 대북 접근법 필요
北·美 관계 통한 비핵화 지름길 될 수도”

이재명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체제 구상으로 내건 ‘E.N.D 이니셔티브’를 두고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김대중(DJ)정부가 추진한 햇볕정책과 큰 틀에서 동일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북한 핵 무력이 고도화되고 북·중·러가 밀착하는 등 한반도 정세가 크게 달라졌는데, 우리 정부 대북 접근법은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변화된 현실에 발맞춘 대북 전략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 총회장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이 대통령이 지난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총회 연설을 통해 밝힌 END는 남북 교류(Exchange)의 단계적 확대를 통해 북·미 관계를 비롯한 북한의 관계 정상화(Normalization)에 협력하고, 이러한 환경을 기반으로 비핵화(Denuclearization)를 추진하겠다는 내용이다. 군사적 긴장 완화와 경제 교류 등을 통해 신뢰를 구축하고 북한의 개혁·개방을 유도해 북핵 문제를 해결한다는 DJ의 햇볕정책, 노무현정부의 평화번영정책과 같은 구상이다. 북핵 위기 발발 전인 1988년 노태우 전 대통령의 7·7 선언에도 비슷한 내용이 담겼다. 비정치적 분야에서의 남북 교류를 확대해 적대관계를 해소하겠다는 7·7 선언은 탈냉전을 앞두고 있던 당시로선 대북 정책의 획기적 전환을 의미했다.

 

북한의 경제·외교적 고립이 심화했던 1990년대 후반∼2000년대엔 이 같은 접근법이 유효했지만, 북한이 중·러를 뒷배로 삼은 채 핵보유국 지위를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현재엔 적용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북한은 ‘안러경중(안보는 러시아, 경제는 중국)’을 추진하며 다자외교무대에 진출하고, 남한에 대해선 ‘적대적 두 국가론’을 고수하고 있다.

 

END 역시 남북 교류·협력 확대를 첫 단계로 삼고 있어 지금의 한반도 정세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았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장은 25일 통화에서 “END는 전형적인 햇볕정책, 관여 정책으로 기존의 대북 접근법에서 벗어나지 않은 내용”이라며 “1990년대 초반은 북한이 지금과 같은 핵 능력이 없었고, 현재는 중·러가 뒤를 봐주고 있는 게 분명하기 때문에 실제로 구동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남성욱 숙명여대 석좌교수는 “비정치적 분야의 교류를 정치 분야로 넓혀 신뢰를 구축하고 관계를 정상화하는 기능주의 접근법은 핵 문제에 적용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END뿐 아니라 그간 이재명정부 대북정책은 전반에 걸쳐 DJ·노무현정부의 틀 안에 있다는 평가가 많았다. 대북 방송 중단, 확성기 철거, 흡수통일 불추구 선언 등을 통해 남북 신뢰를 회복하고 개성공단 재가동과 같은 경제 협력을 추진해 관계를 발전시키겠다는 구상이라는 점에서다. 이 대통령의 대북 정책 참모인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이종석 국정원장 모두 노무현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지낸 인사들이다.

 

이런 상황에 근거해 정부가 북한의 전략 및 국제정세 변화에 발맞춘 대북 접근을 모색해야 하는 시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남북관계보다 북·미 대화 재개 환경을 조성하는 데 우선 집중하겠다는 이 대통령의 ‘페이스메이커’론이나 정 장관이 최근 띄우고 있는 ‘평화적 두 국가 관계’가 한반도의 달라진 현실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다는 설명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두진호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유라시아센터장은 “국제 구조와 한반도 안보 상황을 고려한 보다 획기적이고 융통성 있는 대북 정책이 필요하다”며 “동시에 정권이 바뀔 때마다 널뛰기해왔던 대북·통일 정책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뤄나가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다만 북핵 문제에 진전이 없는 한 한국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많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END는 큰 틀의 방향 제시 차원에서 의미가 있다고 봐야 한다”면서도 “남북 간 지속 가능한 교류·협력과 관계 정상화를 위해서는 북·미 관계를 통한 비핵화 진전을 이루는 게 지름길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북·중·러 협력에 대응해 한·중, 한·러 관계를 개선해 대북 정책의 지렛대로 삼는 장기적 관점의 전략을 수립해야 할 필요성도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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