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점이 아니라 실험실에 들어온 것 같아요.”

25일 서울 성수동 파운드리 브리즘 성수에 들어서자 짙은 오렌지색 인테리어가 눈에 들어왔다. 수많은 안경을 볼 수 있을 것이란 기대와 달리 1층 쇼룸에는 무릎 높이의 낮은 진열대에는 완성품 10여 종만 전시돼 있었다. 소비자 얼굴 모양을 측정한 후 맞춤형으로 제작되기 때문이다.
시선을 사로잡은 건 투명 유리창 너머엔 실제 제작에 쓰이는 3D프린터와 첨단 장비들이 즐비한 공정실이었다. 유리창 너머엔 실험실에서나 볼 법한 장비들이 즐비했다. 안경 제조회사라기보다는 실험실 안에 들어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퍼스널 아이웨어 브랜드 ‘브리즘’이 세계 최초로 맞춤형 아이웨어 제작의 전 과정을 직접 보고 경험할 수 있는 도심형 스마트팩토리를 공개했다. 브리즘은 2018년 론칭 이후, 공급자 중심이던 안경 산업에 3D 얼굴 스캐닝을 통한 맞춤형 설계, 3D 프린팅, AI 스타일 추천, 가상 현실 시착 등 첨단 기술을 접목하며 시장을 개척해 왔다.
브리즘 파운드리 성수는 이러한 성과를 기반으로 브랜드 철학과 비전을 한 단계 확장하는 이정표로 평가된다. 이날 현장 투어에서는 총 4대의 산업용 3D 프린터가 가동되는 모습과 출력된 안경테가 완제품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공개해 참석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성우석 브리즘 공동대표는 “파운드리 성수는 소비자들이 쇼룸 안에 있는 파운드리에서 3D프린트가 실시간으로 안경테를 출력하고 후처리를 거쳐 완제품을 확인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면서 “단순히 제품을 구매하는 공간이 아닌, 고객 참여형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브리즘 파운드리 성수는 지상 2층 규모의 도심형 스마트팩토리로, 1층에는 안경테 제조 공간(파운드리)과 매장, 쇼룸이 들어섰으며 2층은 사무 공간으로 조성됐다. 벽면에는 3D프린터로 뽑아낸 제각각의 안경테가 수북이 싸여 있었다. 제품마다 라벨이 달려 있었는데, 제품을 주문한 고객을 구분할 수 있도록 라벨링을 해둔 것이라고 한다.
쇼룸 전체를 채우고 있는 오렌지 컬러와 콘셉트는 1963년 설립된 IBM 데이터 센터에서 영감을 얻었다. 당시 IBM은 생소하던 컴퓨터 기술을 널리 알리기 위해 데이터 센터를 대중에게 개방했고, 이는 ‘기술을 열어 보여주는 혁신’의 사례로 각인됐다. 브리즘 또한 아이웨어 제조 혁신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무대로 파운드리를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쇼룸에서는 제품을 구매하지 않더라도 얼굴 3D 스캔, AI 기반 스타일 추천, 증강현실(AR) 시착을 통해 브리즘의 차별화된 맞춤 안경 구매 경험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 또 제품을 미리 시뮬레이션 할 수 있는 체험 공간도 마련됐다.
성수라는 지역적 의미도 크다. 성수는 오랜 시간 수많은 공장이 모여 있던 제조의 중심지였으나, 시간의 흐름과 도시의 변화 속에 많은 공장들이 떠나며 본래의 색을 잃어갔다.

박 공동대표는 “브리즘은 과거 안경 제조업에서는 유래가 없던 첨단 기술을 접목해 성수로 돌아왔다. 성수는 물론,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 안경 산업에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겠다”며, ‘메이드 인 성수’의 부활을 선언했다. 이어 “브리즘 파운드리 성수는 단순한 공장이 아니라, 아이웨어의 미래를 빚어내는 실험실이자 무대”라며 “도심 속에서 누구나 제조 혁신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앞으로 성수를 거점으로 글로벌 시장 진출을 본격화하겠다”고 말했다.
‘선주문, 후생산’ 방식으로 악성 재고가를 줄이는 선순환 구조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기존 안경(뿔테 기준)은 원재료인 아세테이트를 가공한 완제품을 제외한 약 90%가 폐기물로 버려진다. 또 판매되지 않는 안경은 악성 제고로 남아 결국 원재료의 5%정도만 고객에게 도달된다. 하지만 브리즘은 선주문 후생산 방식으로 악성 재고 발생되지 않고 3D프린팅을 활용해 필요한 원재료만 사용해 기존 안경 대비 원재료 소비를 줄일 수 있다.
성우석 공동대표는 “브리즘 파운드리 성수는 단 4명의 인원으로 연간 15만 장의 안경테를 생산할 수 있는 효율성 높은 스마트팩토리”라며 “만일 기존 브리즘 고객이 새로운 안경을 제작해서 기존 안경을 폐기할 경우, 3D프린터로 분해한 후 책갈피로 다시 증정한다. 결국 100% 재활용이 가능한 셈"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선순환 구조로 지난해 6월까지 8만장 이상의 안경테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동일 판매량의 일반 안경 생산 과정 대비 2만2000㎏의 원재료와 424t의 탄소 배출을 줄였다.
초창기 연 매출 5억원에 머물던 브리즘은 작년에만 약 3만개의 제품을 판매, 108억원의 매출을 거뒀다. 이는 전년 대비 52.5% 증가한 수치다. 올해는 국내 판매 기준 150억원을 달성할 것으로 보고 있다. 2023년 69억원 규모 시리즈A 투자를 유치한 데 이어 올해 한국산업은행, 헬리오스벤처스, KH벤처파트너스 등에서 80억원 규모 시리즈B 투자까지 유치하며 투자금 195억원을 확보했다. 2023년 중소벤처기업부 주관 ‘아기유니콘’ 기업에도 선정되기도 했다.

향후 브리즘이 주목하는 것은 미국 시장이다. 국내는 안경을 오프라인으로만 판매할 수 있기 때문에 100% 예약제로 운영되는 시스템에서는 한계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미국 시장에서 온라인상으로 주문까지 할 수 있는 앱을 개발 중에 있다.
박 대표는 “미국은 다양한 민족이 사는 나라지만, 기존 기업 제품들은 백인의 얼굴형에 맞는 안경테 위주로 생산돼 소수민족들의 불만족이 큰 상황”이라면서 “한국형 기술과 서비스가 더해지면 성공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이어 “호주와 캐나다 등에서도 제휴 문의가 이어지고 있지만 미국 시장부터 공략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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