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시정요구’에도 제대로 조치 안 해
3개년도 문제 반복 사례 297건 달해
감사원, 정권 바뀔 때마다 편향성 논란
국회 소속 이관은 李정부 과제 중 하나
이관 시 정쟁 벗어나 독립성 확보 필수

‘감사원 국회 소속 이관’. 이재명정부 123대 국정과제 중 1호 과제로 꼽힌 ‘개헌’의 주요 의제 중 하나다. 현재 대통령실 소속 감사원의 회계감사 기능을 국회로 이관할 경우, 국회의 행정부 견제권이 실질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국회는 헌법에 따라 감사원이 제출한 결산검사보고서를 심의해 승인하는 ‘최종 관문’이지만, 실상은 감사원이 종결한 사안을 국회가 추인하는 식으로 국회의 결산 심사가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되풀이되고 있기 때문이다.
◆유명무실 국회 결산 심사
24일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국회의 행정부 견제 기능의 핵심으로 꼽히는 ‘결산 심사’가 정부 부처에 대한 구속력이 크지 않아 사실상 형식적 절차에 그치고 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정부 예산이 당초 계획에 따라 적정하게 집행되었는지를 점검하고, 위법하거나 부당한 사례가 있다면 ‘시정요구’를 한다. 다음 해에 정부는 국회법에 따라 시정요구에 대한 처리 결과를 국회에 보고하게 돼 있다.
하지만 국회의 반복되는 시정요구에도 정부가 제대로 조치하지 않는 경우가 적잖다. 지난 7월 국회예산정책처에서 발간한 ‘2023회계연도 결산 국회 시정요구 사항에 대한 정부 조치결과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3개년도(2021∼2023년) 중 최소 두 해 이상 국회의 시정요구를 받고도 문제가 반복된 사례가 297건에 달했다. 이 중 61건은 3년 연속 시정요구를 받았음에도 문제가 반복된 경우였다.

일례로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자위) 2023회계연도 결산소위와 지난 한 해 이어진 정부 조치의 미흡함이 국회의 결산 심사 현주소를 단적으로 드러냈다.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이 재기하기 위해 재창업, 새 출발을 지원하는 ‘재도전특별자금’ 집행률이 20% 정도밖에 안 된다. 소상공인이 무엇을 원하는지 현황 관리가 안 되니 예산철마다 주먹구구식으로 하는 것이다. 집행률만 높이려 하지 말고, 진정 소상공인들이 재기하는 데 도움될 정책과 예산을 설계하시라.”(국민의힘 이종배 의원)
이 의원의 지적에 당시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 수장인 오영주 전 장관은 “재도전특별자금의 예산 집행이 계속적으로 저조한 부분에 대해서 중기부도 잘 인식하고 있다”며 “기존 예산이 정말 필요한 소상공인들 재창업에 이루어질 수 있도록 면밀히 챙겨 나가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중기부 장관의 다짐은 공허했다. 2024년도에도 소상공인의 재도전을 위한 특별경영안정자금은 1287억원의 예산이 ‘불용’(사용하지 않음) 처리됐고, 특히 긴급경영안정자금은 당초 편성액 대비 25.2% 집행되는 데 그쳤다. 중기부는 소상공인 융자 불용을 최소화하라는 국회의 시정요구를 3년 연속 받았지만, 개선 조치는 제자리걸음이었다.
중기부만의 일이 아니었다. ‘K콘텐츠 펀드 자펀드 투자 실적 부진’(문화체육관광부), ‘선거보전비용 미반환액 수납률 제고 방안 필요’(중앙선거관리위원회), ‘집행 가능 수준의 수소차 보급물량 편성’(환경부) 등 최근 3개 회계연도(2021∼2023년) 연속으로 시정요구를 받았음에도 지난해 유사한 문제가 지속되었거나 조치가 미흡한 사례들이 이어졌다.

◆감사원 국회 이관 시 독립성 필수
국회의 결산 시정요구가 이듬해 예산안 편성에 반영되기 어려운 구조일뿐더러, 국회의 감사역량 부족 문제가 원인으로 분석된다.
실제 국회의 결산 심사는 매년 8월 말∼9월 초에 소관 상임위에서 하루나 이틀, 예결위 심사는 통상 5일간 이뤄진다. 한 해 600조원대 정부 지출을 꼼꼼히 살피기엔 턱없이 부족한 기간이다. 감사원의 회계검사 기능을 국회로 이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다.
감사원 국회 이관 주장은 이번에 처음 나온 건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3년 재임 당시 국회와 ‘파트너십 정치’ 구현을 위해 감사원의 회계감사 기능을 국회로 이관할 필요성을 천명한 바 있다. 당시 위헌 시비와 감사원의 반발로 추진되진 못했지만,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 분산과 국회의 재정통제권 강화에 대한 기대감을 불러 모았다.
다만 감사원을 국회로 이관할 경우 여야 정쟁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독립성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적이란 지적도 뒤따른다. 그간 대통령실 소속 감사원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편향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학계에선 국회 소속 감사원의 독립성 보장을 위해 △여야 합의 기반 초당적 운영 △국회 교섭단체 합의 기반으로 감사원장·감사위원 임명 △국회의원보다 긴 감사원장·감사위원 임기 보장 등의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실제 한국과 같은 대통령제 국가이자 감사원(GAO)을 입법부 소속으로 둔 미국에서는 감사원장을 상·하원 다수당과 소수당 원내대표로 구성된 후보추천위원회가 추천한 인사 중에서 대통령이 지명하고, 상원의 인준을 거쳐 임명한다. 감사원장의 임기는 15년 단임이며, 탄핵이나 상·하원의 공동 의결을 통해서만 해임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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