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과거 러시아 영토였다가 지금은 미국 땅인 알래스카에 전 세계의 이목이 쏠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알래스카에서 만나 정상회담을 했기 때문이다. 1867년 재정난에 허덕이던 러시아는 당시 돈 720만달러를 받고 알래스카를 미국에 팔았다. 정작 미국인들은 “춥고 쓸모없는 땅 매입에 거액을 낭비했다”며 못마땅해했다. 계약 체결을 주도한 윌리엄 수어드 국무부 장관을 향해 ‘바보짓’(folly)을 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오늘날 알래스카가 갖는 경제적·군사적 가치를 감안하면 격세지감이 드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알래스카가 연방국가인 미국의 49번째 주(州)가 된 것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행정부 시절인 1959년 7월의 일이다. 1개월 뒤에는 태평양의 하와이도 정식으로 주의 지위를 갖게 되면서 현재 미국의 50개주 체제가 비로소 완성됐다. 알래스카는 면적이 172만3000㎢가 넘어 미국에서 가장 넓은 주에 해당한다. 남한 영토의 17배에 이르는 광활한 땅이 아닐 수 없다. 반면 인구는 75만명 정도로 무척 적은 편이다. 북극과 가까운 지리적 조건 탓에 겨울 추위가 혹독하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미국 육군에서 정예로 꼽히는 제11공수사단은 알래스카 앵커리지 부근에 주둔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도중 창설된 이 부대는 6·25 전쟁에 참전하는 등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11사단의 별명은 다름아닌 ‘북극의 수호 천사’(Arctic Angel)다. 21세기 들어 미국·러시아·중국 간에 핵심적인 전략 경쟁지로 부상한 북극의 방어가 부대의 핵심 목표임을 알 수 있다. 트럼프는 최근 11사단장을 지낸 조지프 힐버트 소장을 중장으로 진급시켜 주한 미 8군 사령관에 임명했다. 북태평양 일대에서 러시아와 중국의 군사적 동태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것도 주한미군 역할의 일부라는 트럼프 행정부의 안보관이 반영된 인사라고 하겠다.

알래스카 주정부 줄리 샌드 상무부 장관이 지난 16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을 방문했다. 그는 기념관 운영 주체인 전쟁기념사업회 백승주 회장과 만난 자리에서 “기념관 내 유엔군 전사자 명비에서 6·25 전쟁에 참전해 희생된 알래스카 출신 9명의 이름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저 북녘의 척박한 알래스카 땅에도 6·25 전쟁에 참전한 용사들이 있었고, 그중 9명은 한국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는 사실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마침 알래스카에 매장된 액화천연가스(LNG) 개발 사업에 한국 기업이 참여하기로 하는 등 양자 간의 경제 협력이 활성화하고 있다니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6·25전쟁에서 시작된 한국과 알래스카의 인연이 과거와 현재를 넘어 미래에도 지속되길 바란다”는 샌드 장관의 바람이 꼭 실현되길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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