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화 의제 제외’ 조건 사실상 거부한 듯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년 만의 유엔 총회 연설에서 북한이나 한반도 정세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최근 “트럼프와 좋은 추억” 운운하며 러브콜을 던진 것에 일단은 거리를 둔 셈이다.
유엔 총회 고위급 회의 개막을 계기로 열린 한·미·일 3국 외교장관 회의에선 김정은의 바람과 달리 ‘북한 비핵화’가 3국의 공동 목표로 채택됐다.

트럼프는 23일(현지시간) 뉴욕 유엔 본부에서 열린 유엔 총회에 참석해 기조 연설을 했다. 그가 유엔 총회 연단에 선 것은 1기 집권기 시절인 2019년 이후 6년 만이다. 이듬해인 2020년부터 코로나19 팬데믹(감염병 대유행)으로 유엔 총회를 비롯한 다자 외교가 사실상 멈춰섰고, 대유행이 아직 한창이던 2021년 1월 트럼프는 대선 패배의 결과로 백악관을 떠났다.
트럼프는 약 1시간에 걸친 연설에서 불법 체류 문제의 심각성, 유엔의 존재감 부족,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억류 중인 이스라엘 인질의 즉각 석방, 러시아산 석유의 수입 금지 필요성, 기후 위기의 허구성, 박해 받는 종교의 자유 수호 등에 관해 이야기했다. 하지만 북한 핵무기나 비핵화, 한반도 평화 등에 관해선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앞서 김정은이 북·미 정상회담을 희망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낸 점에 비춰보면 트럼프가 북한에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는 해석이 나올 법하다. 김정은은 지난 21일 최고인민회의(우리 국회에 해당) 연설 도중 “나는 아직도 개인적으로는 현 미국 대통령 트럼프에 대한 좋은 추억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미국이 허황한 비핵화 집념을 털어버리고 현실 인정에 기초하여 우리와의 진정한 평화 공존을 바란다면 우리도 미국과 마주 서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덧붙였다. 북한 비핵화를 의제에서 제외한다는 조건 아래 2019년 이후 중단된 북·미 정상회담의 재개를 촉구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김정은의 이 같은 러브콜에 대해 백악관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달성하기 위해 김 위원장과의 대화에 계속 열려 있다”는 원론적 입장을 밝혔다. 북한 비핵화를 의제에서 빼 달라는 김정은의 요청을 완곡하게 거부한 셈이다.

미국 행정부의 명확한 입장은 유엔 총회 개막에 맞춰 성사된 한·미·일 3국 외교장관 회의에서 나왔다. 조현 외교부 장관,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 이와야 다케시(岩屋毅) 일본 외무상은 공동 성명에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complete denuclearization)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일단 ‘미국이 비핵화 집념을 털어버리면’이란 북한의 전제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셈이다.
다만 미·일이 ‘북한 비핵화’라는 표현을 쓴 반면 우리 외교부는 보도자료에서 ‘한반도 비핵화’라고 표기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한반도 비핵화도 북한의 비핵화를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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