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초기 열이 38도 이상 올라 병원에서 처방해 준 타이레놀을 먹었다”(임산부 A씨)
“첫째 때도 먹고 괜찮아서 둘째 임신 중에 아플 때마다 먹었는데 걱정된다”(임산부 B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임신 중 타이레놀 복용을 아기의 자폐증 발생 위험 요소 중 하나라고 발표하자, 국내 임신부들이 큰 혼란에 빠졌다. 타이레놀은 아세트아미노펜 성분이 포함된 대표적 해열진통제다. 그동안 의사들은 타이레놀을 임신부의 통증과 발열 치료에 폭넓게 처방해왔다. 임신부에게 안전한 해열·진통제 중 하나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간)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보건부 장관과 함께한 백악관 행사에서 “타이레놀 복용은 좋지 않다. 반드시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 임산부들은 극도로 사용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극심한 고열일 때만 복용해야 하며, 그마저도 극히 드물게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케네디 장관은 올 4월 내각 회의에서 "9월까지 자폐증 유행의 원인을 파악하겠다"고 자신했다. 케네디 장관은 과거 백신 접종이 자폐증을 유발한다고 주장했으며, 그가 설립한 백신 반대 단체인 '아동건강보호단체'는 타이레놀의 주성분인 아세트아미노펜이 아동의 신경학적 문제와 연관성이 있다는 주장을 제기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 발표에 이어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임신부의 아세트아미노펜 사용이 어린이의 자폐증,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같은 신경학적 질환의 위험 증가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내용을 반영해 아세트아미노펜 제품에 대한 라벨 변경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미국 내 의사들에게도 관련 내용을 알리는 서한을 발송했다.
다만 FDA는 인과관계는 명확히 확립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이에 대해 미 뉴욕타임스(NYT)는 수십 년간의 연구로도 밝히지 못한 자폐증 원인에 대한 답을 5개월 만에 내놓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이라고 짚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질타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과학 연구는 신중을 기해야 할 뿐 아니라 공중 보건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훼손할 수 있어서다.
아트 캐플란 뉴욕대 생명윤리학과 교수는 "권위 있는 사람이 내뱉은 증거 부족, 소문, 오래된 신화의 재활용, 형편없는 조언, 노골적인 거짓말, 위험한 조언 중 가장 위험하다"고 말했다. 스티븐 플라이시만 미국 산부인과의사회 회장은 "자폐아를 둔 부모나 임산부들이 '먹지 말았어야 했는데'라고 후회하지 않길 바란다. 열을 치료하지 않으면 부작용이 더 많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타이레놀 제조사 켄뷰는 당일 반박 성명에서 "독립적이고 신뢰할만한 과학적 연구는 아세트아미노펜이 자폐증을 유발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준다"며 "우리는 이와 반대되는 어떠한 주장에도 강력하게 동의하지 않으며, 이러한 주장이 임신부 건강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깊이 우려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타이레놀의 자폐아 위험성을 언급하자 국내 제약업계도 긴장하고 있다.
의학적 근거가 불확실한 트럼프 대통령 발언에 소비자들이 동요할 경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당시 국내 보건당국의 타이레놀 권장으로 해열·진통제 판매가 급감한 것과 유사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 발언 이후 국내 임산부들이 몸살 증상 때 어떤 약을 복용할 수 있는지 약국에 문의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것 같다”며 “코로나 사태 때 당국의 '타이레놀' 발언으로 타이레놀 품절 대란이 발생하고 국내 아세트아미노펜 해열·진통제 판매는 급감한 것과 유사한 상황이 발생할지를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해당 내용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식약처는 전날 “미국 정부의 타이레놀 관련 발표에 대해 향후 해당 업체에 이에 대한 의견 및 자료 제출을 요청하고 관련 자료 및 근거에 대해 신중히 검토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임산부들은 큰 혼란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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